2023.12.29 13:31
꽃그늘 - 이만구(李滿九)
햇빛 드는 산길에 겨울꽃 피어나
땅 위에 늘어진 그림자
그 꽃의 그늘아래
나는 꽃과의 마지막 이별을 그려본다
세상에 빛이 있어 그늘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꽃병에도
흰 카네이션과 가지에 맺힌 잔꽃이 핀다
아내가 연말에 사 온 꺾꽂이 꽃
유리 꽃병 안의 물을 갈며
새해까지 필 것 같은
저 겨울꽃이 그리 오래갈 줄 몰랐다
화려하게 피는 여름철 꽃일수록
그림자 짙게 드리우고
제 무게 못 이겨 쉬이 지고 마는 숙명
가위로 싹둑 잘리고 상처 난 꽃은
서로들 가지런히 기대어
천장 캔라이트 조명등 아래
아무런 그늘 없어 더 청초하게 보인다
꽃의 삶은 늘 아름다운 여운 남기고
덧없는 기쁨, 한 순간 그늘 속으로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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