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8 13:49
회향초 꽃피는 언덕 - 이만구(李滿九)
세월은 덧없이 또 한 해의 봄을 여의고
푸르러 가는 유월의 적막 속에서
회향초 꽃들이 산언덕 위에 화사하게 피어있다
푸른 파도 넘나드는 해안에 피어난다는
그들의 고향은 어디쯤인가
한가로이 저만치 초록 잎사귀 펄럭거리는
사랑 하나 품은 꽃무리의 향연...
시인의 마음에도 고향은 아득히 먼데
저리도 환히 피어나 더 사무치는 그리움 인다
그 꽃을 길에서 만난 성자의 꽃이라던
바람이 스쳐가는 산기슭에서
어느 시인이 바라본 시 속의 풍경
마음벽에 비친 사슴 울음 사진 한 장 떠오른다
가을이 오면, 이곳 해거름 진 저 언덕에는
노랗던 그 풀꽃은 자취도 없고
덩그러니 팔 벌린 메마른 가지들...
길가, 초연하게 늘어 선 풀의 십자가 따라
어디론가 떠나는 목이 긴 사슴들과
회향초가 한 해의 생을 남기고 간
이 산속에 쓸쓸한 바람소리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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