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암정님께

2005.08.30 03:49

미미 조회 수:263 추천:17

영교님의 작은 관심이 제겐 귀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날 참석하신 안상호님의 시로 제 마음을 전합니다

주일에는 희랍의 물가에 간다          
I.            
주일에는 희랍의 물가에 간다 거기 초록을
틔우고 밝아오는 호수에서 수영하며
젖은 머리 천천히 바람에 말리우고
주일에는 자유롭게 넓어오는 그늘, 말석쯤에
기대앉아 황혼에 잠겨드는 희랍의 마을들을
생각한다, 생각하는 마을의 가난한 목수여
주일에 그대가 만드는 희고 단단한
어깨의 집. 1층, 호수 빛나고 2층, 구름
구름 속에 천둥이 숨어다니다
왕조실록 독사의 자식들에게
가끔 마른 번개를 메다꽂기도 하는
근사한 그대의 그 집 근처에 비 내리고
물방개 낮게 강의 바위틈으로 기어다니는
주일에는 희랍의 숲으로 간다 가랑이 걷어
올린 채 숲 속 어딘가 어딘가 허물어진 신전의
귀퉁이에서나 젖고 있을 지상에 남은
단 하나 정당한 영혼. 그대와 만나기 위해
음지식물은 태양으로 뻗고 하냥 볕발 아래
자라온 아이들 그때 비로소 그늘에서
씹는 빵의 참 맛을 깨닫게 되고.
II.
저녁에 아름다운 땀을 빛으로
흘리며 당신의 상처로 솟아오르는
언덕에 올랐지 언덕 너머
시내는 흘러서 서로 다른 종족의
물들이 부드럽게 얽혀 구르고
우리들은 모두 굴러가며
당신이 만들었으나 다스리지 아니하는
큰 바다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
바다-. 물고기의 뱃속은 편안해라
별 사이로 독수리는 높이 날고
당신의 나라 곳곳에서
부풀어오르는 물풀들의 언덕.
우리들은 모두 선선한 마법의 물옷으로
당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물고기야 네 아가미의 빗살이
가지런히 바다를 빗질해 가는 저녁
고쳐 놓아도 자주 쓰러지는 지느러미를
손질하면 우리들은 떠다니지, 물결 바다
쉽게쉽게 넘실대는 이랑 사이로.

III.
잘 훈련되지 않은 다리에게도
큰 산은 계곡을 열고
그 계곡을 따라 산봉에 오를 수 있게 했으므로
우리들은 어둠의 행군 속에서
모든 물의 어머니, 모든 길의 어머니, 모든
일광의 어머니들과 친해지고
아무데서나 함부로 자궁을 낳는
큰 산의 풀꽃들과도 친해졌다
아아 비로소 평등하고 자유로워라
우리들은 더 이상 당신 이후 별이 총총하게
많은 공화국의 말씀들을 갖지 아니한다
다만 씨족의 성(姓)을 위해
척추를 비틀며 싸우던 자들의 이마 위로
산 그림자 앞서가는 큰 산을 덮어가게 하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영원히 물 아래 깃들거나
북독일의 깊은 삼림 사이로 숨어갈 것이지만
잘 훈련되지 않은
인간의 이 작은 다리에게도
큰 산은 우뚝한 벼랑을 솟게 하고
그 벼랑으로 오르는 길을 허락했으므로
눈물. 정상에서 당신과 만나는
우리들의 눈물.

*물고기의 뱃속-구약 요나
*독수리는 별들 사이에 높이-구약 오바댜


<안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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