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이야기 ( " )

2010.03.10 05:12

최문항 조회 수:1155 추천:114




                              연이 이야기




                                                                  
                                                                                                                                           최 문 항
  저녁 식사를 끝내고 한국 방송이 시작될 쯤 이면 현수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요즈음은 붓글씨 쓰는 재미가 솔솔 하단다. 현수는 한동안 진돗개에 거의 미치다시피 하여 매일 저녁 나에게 전화를 걸고서는 “야! 오늘 잘 지냈냐? 장사는 어땠어?”하면서 슬슬 개소리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의 80%는 진돗개에 대한 이야기이니, 내가 “야! 이제 개소리 좀 그만 하자”고 몇 번을 졸라야 겨우 전화를 끊어준다.
  해방되기 전 한국 땅에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대개는 우리 토종 진돗개의 잡종인 누렁이, 바둑이, 똥개, 한 마리씩은 다 키우고 있었고, 잡식을 하는 강아지는 식구들이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이고, 마루 밑이나 뒷마당 어느 구석에서 재워도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무더운 여름 복날에 주인아저씨의 보양 음식으로 지친 여름을 기름지게 해주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가축 중의 하나였다. 유난스럽게 자기 집 식구들을 구별하여 잘 따르고 시어머니에게 야단맞은 새댁이 신세 한탄할 때 가장 가까이에서 그 넋두리를 잘도 들어주던, 그저 말만 못 한다 뿐, 길게 달린 꼬리 하나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친구요, 식구 중의 하나였다.
  당시 일본사람들은 한국인의 기질을 그대로 닮은 진돗개를 거의 병적으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악명 높은 일본국 육군 성에서 훈령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개는 모조리 잡아다가 죽여서 그 가죽으로 장교들의 외투와 군화를 만들었다고 하니 가히 우리 바둑이, 누렁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수난기를 격은 것이었다.
  현수와 그의 친구 몇 사람이 진도(珍島)까지 직접 나가서 혈통이 확실한 진돗개 한 쌍을 방문 비자로 모셔 왔다. 그들이 정성을 다해 돌본 결과 다음해 봄날 드디어 네 마리의 새끼를 얻게 되었고 그중에 제일 예쁜 암놈 한 마리를 현수가 직접 들고 와서 내게 선물하였다.
  “야, 이놈의 할아버지는 진도에서 챔피언을 세 번씩이나 먹었고, 그 어미는 중견 부에서 제일 잘 생긴 개로 미견에 뽑힌 귀한 혈통의 자손이니 잘 키워야 한다.”
  우선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개 주인 이름, 주소, 등 진도견 협회의 양식에 기록할 내용들을 적어 나아가더니 개 이름을 정하라고 했다. 이들 형제의 돌림자는 “연”으로 정해졌고 그 이름들이 연동이, 연실이, 연개, 그리고 우리 강아지 연...이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내가 “이”를 붙여 주자고 한다. 황진이 이름에서 따온 (이)를 붙여 연이(蓮伊)로 정했다.
  현수와 그 친구들은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순종 진돗개를 미국 내에 번식시키기를 원하고 있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날렵하고 영리한 진돗개를 덩치만 크고 아둔하기 그지없는 일본 개 ‘아키다’와 혼동하고 있으며 진돗개라고 소개해 봤자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하면서 혹시 카요테(coyote)가 아니냐고 되물어 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네 마리의 강아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며 나에게도 매일같이 전화를 걸고 충고도 하고 간섭도 하고 교육시킨다는 명목으로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동쪽을 향해서 떠오르는 태양의 기를 받게 하기 위해 6인치 높이의 발판을 만들어 주고 등을 고추 세우고 머리를 잔뜩 치켜들고 똑바로 걸을 수 있도록 매일 연습을 시켜야 한다. 먹이를 줄 때에도 주인이 먹으라고 할 때까지는 3보쯤 뒤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언제든지 밥그릇을 치워도 덤벼들지 못하게 어려서부터 훈련을 잘 시켜야 해. 먹이는 dry dog food 을 먹이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배설물에서 냄새가 덜 나서 청소하기에 쉬워. 그리고 고등어와 오징어를 먹이면 털이 빠지지만 북엇국을 끓여 먹이면 털에 윤기가 나게 되지, 닭 뼈는 절대로 줘서는 안 돼 그렇지만 소뼈는 치아가 건강해지도록 가끔씩 주는 것이 좋아. ”
  현수의 지시에 따라 근사한 개집을 설계하고, Home Depot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어린아이들 서너 명은 들어가 놀 수 있는 크고도 멋진 집을 지어 주었다. 물론 동쪽을 향해 6인치 높이의 발판도 만들고 주변에 울타리도 둘러 쳐주었다.
  진돗개 협회의 추천을 받고 뉴포트 시에 있는 Back Bay 가축병원의 Dr. Sean Cherian에게 연이를 데리고 가서 필요한 예방주사도 놓고 오렌지카운티에 등록하는 수속 절차도 부탁을 했다. I. D가 기록된 Micro Chip을 연이의 어깨 부근에 주사기로 넣어 주어서 강아지를 잃어 버렸을 때에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Dr. Sean도 이미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으며 미국 내 번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가축병원에서 추천해 준 20년 경력의 ‘린다’라는 여자 조련사가 집으로 왔다. 일 개월밖에 안된 연이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조련사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조금 뚱뚱한 체격의 ‘린다’는 연이를 능숙한 솜씨로 어루만지며 어느새 연이의 목에 Leash를 걸었다. 그녀가 갑자기 연이를 향해 큰소리로 ‘CURB’라고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Leash를 힘껏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조그만 연이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내와 딸아이는 거의 울상이 되어서 ‘린다’의 다음 행동을 긴장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땅바닥에 팽개쳐진 연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 거리면서 다시 일어섰다. ‘린다’는 이제야 준비가 끝났다는 듯이 흡족한 표정으로 연이 주변을 맴돌면서 “앉아” “일어서” “엎드려“등 아주 기초적인 훈련으로 한 시간을 다 채우고 25불을 받아들고는 다음 주일에 또 오겠다면서 어느 시간이 좋은가를 물었다. 아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딸아이가 ‘내일 전화로 알려 주겠다’면서 서둘러서 연이를 가슴에 꼭 끼어 안고 이 층 자기 방으로 총총히 올라가 버렸다. 이것으로 연이는 훈련 받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남매만 있던 우리 집에 또 다른 딸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모든 일에 최우선 하는 것이 연이 또 연이였다. 어디를 가도 동행해야 하고 멀리 여행을 떠나도 연이 물건을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어느덧 연이가 우리 집에 온 지도 한해가 지나고 이제는 큰 개로 성장했는데, 마침 진도견 협회 주관으로 품평회가 있어서 연이도 출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L.A 북쪽에 있는 엘 몬테 팍에는 이른 아침부터 자신들이 애지중지 귀하게 키운 진돗개들을 앞세우고 많은 한인이 모여들었다. 품평회는 곧 시작되었고, 여러 심사 과정을 거친 후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 진도견 협회에서 파견 나온 심사관들이 만장일치로 우리 연이를 중견(中犬)부에서 미견(美犬)으로 선출해 주었다. 미스 진돗개로 선출된 셈이다. 품평회가 끝난 후 수캐를 가진 여러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를 준다는 조건으로 접을 붙이자고 하며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현수는 연이가 입상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기뻐하면서
  “야! 아무한테나 시집보내지 말고 내가 정해주는 놈하고 접붙여야 한다. 그리고 분양할 때에도 괜찮은 집을 골라서 주어야지 진짜 순종의 가치를 알고 잘 키우는 법이거든, 너는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
  어찌 되었든 연이의 입상은 아내와 딸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우리 집 뒤뜰은 산티아고 오크팍에 연결되어 있어서 조용한 밤이 되면 목이긴 사슴들이 서너 마리씩 기웃거리기도 하고 카요테(coyote)들이 떼를 지어서 처량하게 울기도 한다. 지난여름에는 검은 띠와 노란색이 잘 배합된 3피트가 넘는 킹 스네이크가 집안까지 들어와서 911에 전화를 하고 법석을 떨기도 하였다. 현수는 사냥 잘하는 진돗개 한 마리만 뒷마당에 풀어놓으면 안심해도 된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정말로 연이는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고 다니면서 도마뱀, 쥐, 참새 같은 작은 동물들을 잡아서 툇마루에 나란히 진열해 놓고 문을 앞발로 박박 긁고는 보란 듯이 노획물을 자랑하며 뒷마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안심이 안 되는지 매일 밤마다 연이를 차고에 불러들여 잠을 재웠다. 외출했다가도 조금 늦어져서 밖이 어두워지면 연이 걱정에 안달을 한다. 혹시라도 카요테가 연이를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해가 진지도 오래되었건만 아직도 한낮의 열기가 남아 있는 뒤뜰에서 갑자기 연이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여러 마리의 카요테 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 왔다. 연이가 울타리에 바짝 붙어서서 바깥쪽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연이가 “깨-앵”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물러앉으며 나뒹구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죽음에 직면한 짐승만이 낼 수 있는 처절한 공포의 울부짖음이었다. 나는 엉겁결에 뒤뜰에 세워 두었던 낡은 골프채를 집어들고 울타리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미 카요테 떼거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소리에 놀라 온 식구가 다 뛰쳐나왔다.
  “엄마! 연이 발에 저 피 좀 봐! 아앙…….”
  딸아이가 마치 제가 카요테한테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연이의 오른쪽 앞발은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넘어져 있는 연이는 더욱 큰 소리로 깽깽 깨갱 깽 온 동네가 떠나가게 울어댔다. 옆집에 사는 Willy 영감은 벌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차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Animal Emergency Hospital에 연락을 해 놓고 약도까지 그려 주면서 빨리 연이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 아내는 거의 정신이 나간 듯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는데 그래도 아들 녀석이 연이를 끌어안고 내 차의 뒷좌석에 올라타면서 “Let's go dad.”라고 외쳤다. 평소에는 “stupid yuonee”하면서 발길질을 하던 녀석이 이렇게 나서 주니 고맙기 도하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밤 열 시가 지난 텅 빈 프리웨이를 정신없이 달려서 동물 병원에 도착했다. 수건으로 대강 동여맨 연이의 앞다리에는 피가 흥건히 배어 있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급한 우리들의 마음과는 달리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바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연이 보다 먼저 온 고양이는 건전지를 삼켰는데 X-ray를 찍어야 한단다. 또 덩치가 큼직한 늙은 개는 아마도 오늘 밤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면서 함께 온 대여섯 명의 식구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연이는 너무나 놀랐는지 이제는 지쳐서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겨우 수술과 입원 수속을 할 수 있었다. 카요테가 연이의 오른쪽 앞발을 물었는데 연이가 날쌔게 낚아채어서 3인치 정도 찢어지고 말았지 조금만 늦었어도 한쪽 다리를 잃어버릴 뻔했다. 열두 바늘을 꿰매고 진통제 주사를 맞은 다음 입원실로 옮겨졌고 다음날 정오까지는 안정을 위해 입원을 하여야 만 했다.
  이곳이 동물 병원인지, 아니면 사람이 응급실에 들어간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응급실 담당 의사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였더니 아주 냉정스럽게 사무적인 말투로 그런 일은 연이의 주치의에게 물어보라고 하면서 횅하니 방을 나가 버린다. 미국이 참 좋기는 좋은 나라구나! 개도 주치의가 있으니 말이다. 하기는 미국에서는 여자가 제일이고, 그다음은 어린아이들의 천국이고, 다음이 애완동물들, 남편들은 어느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다음날 정오에 연이를 퇴원시키려고 동물 병원으로 갔다. 사람이 다쳐서 응급실에 들어갔으면 의당 의료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연이의 경우는 보험이 있을 리 만무하니 수백 불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고 퇴원 수속을 마쳤다.
  연이가 하루를 보낸 입원실은 시멘트 바닥에 쇠 철망으로 칸을 막아 놓은, 허름하기 그지없는 시설이었다. 성질이 까다로운 연이는 필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처음 연이가 우리 집에 입양되어 왔을 때에도 제 어미를 그리워하며 꼬박 삼일 밤낮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아내의 속을 썩여서 하는 수 없이 마켓에서 can food을 사다가 강제로 입을 벌리고 스푼으로 떠먹였던 기억이 났다.
  머리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고깔을 쓰고, 오른쪽 다리는 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 있는 연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세 다리로 쩔룩거리면서도 아내와 딸아이를 발견한 연이는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간호사가 퇴원 후의 주의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여름철이니 화농이 안 생기게 매일 같이 환부를 소독해 줄 것과, 일주일 동안은 아침저녁으로 먹이에 항생제를 섞여 먹여야 하고, 빠른 시일 내에 연이의 주치의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고 수술한 곳의 실밥도 빼어 주라고 했다.
  
  Back Bay가축병원은 수개월 전에 Dr. Ann Franke라는 여자 수의사가 Dr. Sean으로부터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Dr. Ann은 연이를 보자마자 ‘진도’라고 또렷하게 발음하면서 참 영특한 개라고 하며 주인을 끝까지 잘 섬기고 충성심이 강한 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몇 주 전에 아시아판 타임지에서 읽은 칼럼에서 ‘맹인이었던 주인이 죽은 지 일주일이 되었어도 주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주었다’는 충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이는 치료받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Back Bay가축병원에 갔다. 그때마다 아내와 딸아이가 동행하였고 Dr. Ann은 늘 연이를 ‘your daughter’라고 불러 주었다. 어느덧 연이의 상처도 아물어 가고 목에 쓰고 다니던 고깔도 벗게 되었다. 그리고 15일 후에 마지막으로 상처를 확인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가 Dr. Ann에게 연이의 건강에 대해서 상담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남편과 그의 친구들은 하루라도 빨리 연이를 혈통이 좋은 건강한 수놈과 접을 붙여서 여러 마리의 새끼를 얻기를 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Dr. Ann의 대답은 뜻밖에 첫 번째도 Spay(불임수술)요, 두 번째도 Spay라고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연이는 더 이상 Pet이 아니고 그 집의 완전한 식구이며 딸인데 새끼 몇 마리 얻기 위해 임신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번씩 암내를 풍기게 되면 동네 수캐들도 문제이지만, 같은 종(種)에 속하는 카요테의 공격이 또 일어 날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임신을 하여 몇 개월 후에 새끼를 낳고 나면, 연이는 지금과 같이 순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태도 잃어버리게 되고 또한 수명도 이삼 년은 짧아진다는 것이었다.
  Spay수술비용은 70불 정도면 되고 매우 안전한 방법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하고 윽박질렀으나 아내와 딸아이의 연합 전선은 완강하기 그지없었다.
  이 언쟁은 주변의 친구들도 각각 남과 여로 갈리어서 수 주일을 싸웠다. 현수는 노발대발하면서 연이를 당장 돌려보내라고 야단을 했고 그럴수록 아내를 중심으로 하는 women power는 더욱 거세어만 갔다. 한쪽에서는 순종 진돗개의 혈통을 이어 가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연이는 이미 아내와 딸 아이 에게는 어떤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연이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진돗개를 전 미국에 번식시키는 중대한 사명을 완수하는 것보다 아내와 딸아이가 딸같이, 동생같이, 사랑하는 건강하고 귀엽고 아름다운 연이로 남아 있게 해 주기 위해 이번 토요일 일찍이 Back Bay가축병원에 Dr. Ann을 찾아가기로 했다.                                        (문)
                





최   문   항
1975년 미국으로 이민
오렌지카운티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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