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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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Chuck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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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기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지난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 있다.

그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된다.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 사랑의 의사 장기려 박사 이야기(한국일보,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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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이 정도에 행복을 느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옛날’엔 정말 그랬다. 내 아버지 살아생전에도 쌀독에 쌀이 2/3쯤 차있고, 연탄창고에 시커먼 연탄이 몇 줄 겹으로 쌓여있으면 가장의 구실을 다한 것으로 알고 가슴을 내밀었다. 거기에 겨울을 앞두고 김장까지 마쳤다면 더할 나위없는 행복이라 믿었고 어머니 앞에서 큰 소리를 뻥뻥 쳤다. 깍두기를 담을 때 대구아가미가 중간 중간 박히는 해에는 당신께서도 과분한 사치라 여기셨는지 동네 홀로 사시는 이북할머니에게 한 양재기 퍼다 주라고 그러셨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새집에 이사 와서 제일로 좋은 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성산(聖山) 장기려 박사(1911년~1995년)는 한평생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사신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분이다. ‘바보 의사’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그는 이광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생전에 그가 살았던 부산 복음병원 옥탑방은 엘리베이터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야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다. 지금도 그런 구조를 가진 병원이 더러 있으나 그곳에 본격적인 살림을 차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장 박사께서는 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그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집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곳에서 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며 쓴 시가 이것이다.

 한국전쟁 전 이북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의사였지만 전쟁 중 평양의대학병원에서 밤새워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돌보다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서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북에 남겨진 아내와 다섯 자녀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삶을 사셨다. 그 그리움의 눈물이 고통 받는 이웃과 사회를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설립하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직원들 몰래 도망가라고 뒷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던 그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이 하소연하면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에서 까라고 하기 일쑤였다.

 그 누적으로 인해 자신의 월급은 물론 병원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자 병원에선 원장의 재량권을 정지시키기까지 했다. 권한이 없어지자 이후엔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 야밤에 탈출하라고 알려준 뒤 병원 뒷문을 열어 놓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런 분이 쓰신 시이기에 시의 행과 행간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고 통째로 숙연해진다. 평생 유복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자족의 삶과 참사랑의 실천에서 느끼는 행복이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르르 전율케 한다.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은 번지레하게 하지만 정작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부는 언제나 옳고 정의라고 생각한다.

 장기려 박사의 삶과 철학은 존경받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는 이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행복의 열쇠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사유토록 한다. 그는 평생 혼자 살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들의 친구로 살았으나 외롭지 않았고, 평생 집 한 채 없이 병원 사택에서 살았으나 그는 사랑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가 평생의 신조로 삼은 ‘성산삼훈(聖山三訓)’이 요즘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사랑의 동기 아니면 말을 삼가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문제의 책임은 항상 자신이 져야 한다.’ 장 박사의 삶은 변명과 책임회피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일대전환을 촉구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었다고 해서 모두 장기려 박사나 이태석 신부와 같은 존경받는 의사가 되지는 않는다. 윤리의식과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고 의사가 되었건만 돈만 밝히는 의사들도 주위에는 수두룩하다. 그런데, 잘하면 누구 못지않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안철수 씨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안타깝다. 지금의 침묵이 장기려 박사의 성산삼훈과 너무나 동떨어져서이다. 자신의 1호 영입인사와 제자가 몹쓸 일에 연루됐음에도 여태 사과는커녕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진작 유시민 작가는 정치인 안철수를 사람에 대한 사리분별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것에 더하여 장고 끝에 또 악수를 두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해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