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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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Chuck

        Good morning to you out there " 문소" 씨,

                       90세 할머니의 글


방문객이 네이버에서 이미 보셨을지 모르는 90세 할머니의 글을 이곳에 옮겨 봅니다. 
눈도 어두워지고 체력도 퇴세하지만 자꾸 기억력이 쇠퇴해 가니 실망이 큽니다. 
이제부터라도 아주 늦지는 않았을랑가? 홍영녀 할머니를 본받아야 할가 봅니다. 

There is some parallel between us; her learning to read and write at the later stage of her life and my practice how to read and write in English... I can identify the thrill of her first phone call to her daughter as my first e-mail writing to my children... the joy of communicating with my grandchildren in English is also parallel to her joy of communicating with her daughters in writing...etc, etc... 
                                                                   
                                                                        

다음은 퍼온 글입니다. 

올해 아흔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 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 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 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는 밤 시간이 가장 길고 무료하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슬하에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 아래부터 할머니의 글 입니다. -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한 평생 끌고 온 내 한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이렇게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그래서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 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1,2,3,4를 100까지 썼다. 내 힘으로 딸네 집 전화를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 ‘메룻찌’로, 고등어는 ‘고동아’로, 오만원은 ‘오마넌’으로 적기 때문이다. 한번은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참고: 맞춤법이 틀린 일기를 고쳐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출처: Naver.com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