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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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뎃생/김광균

2008.03.31 05:48

정문선 조회 수:151 추천:24

뎃 생 - 김광균 -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단한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라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薔薇) 목장(牧場)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조선일보>(1939) - 해 설 [ 개관정리 ] ◆ 성격 : 회화적(시각적), 주지적, ◆ 표현 : 모더니즘에 의거하여 감성이 지성에 의해 억제되고, 회화적인 수법에 의해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 황혼 무렵의 모습을 '향료, 노을, 고가선, 구름, 색지, 장미, 목장, 깃발, 능금나무, 깃발'이라는 감각적 명사와, '기울어지고, 밤이 켜지고, 칠한, 부을면, 꺼질 듯' 등의 시각적 서술어를 효과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감각적 형상성을 획득함. ◆ 중요시어 및 시구 * 전신주 하나 하나 기울어지고 → 어둠이 찾아오면서 전신주가 점점 희미하여져서 어둠에 묻히는 모습 * 밤이 켜진다 → 황혼이 기울면서 등불을 켜거나 별이 나타나는 것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드러냄. * 구름은 ∼ 한 다발 장미 →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됨.(배색의 재치가 뛰어남) 노을에 물든 붉은 구름을 장미로 비유함(계사은유) *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들길의 모습을 통해 사라져가는 황혼의 풍경을 표현함. '꺼질 듯이'라는 위기감과 '외로운'이라는 고독감으로 사라지는 황혼의 풍경을 효과적으로 묘사함. 주제연 : 밤이 오는 길목, 들길에 서서 어둠을 맞는 시인의 '고독'의 정서가 직설적으로 표현됨. ◆ 주제 ⇒ 황혼 무렵의 애잔한 풍경 [ 시상의 흐름(짜임) ] : 시선의 이동에 따른 전개 ◆ 1연 : 황혼무렵의 풍경(전신주, 노을) ◆ 2연 : 고가선 위로 펼쳐지는 밤의 풍경 ◆ 3연 : 저녁 놀에 물든 구름의 모습(구름 = 장미) ◆ 4연 : 외롭고 쓸쓸한 들길의 풍경(들길)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시의 제목인 '데생(dessin)'은 프랑스 말이고, 우리말로는 '소묘(素描)'이다. 데생은 단색으로 그린 그림이며, 형태와 명암에 강조점을 둔다. 제목이 그림 그리기에 관한 것이니까. 이 작품은 회화시(繪畵詩)일 수밖에 없다. 회화시는 시각적 심상에 의존하며, 화자의 주관적인 정서 표출을 절제하며, 말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보면 된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1은 날이 어두워 올 무렵의 먼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모습이고, 2는 하늘의 구름과 땅 위의 풍경이다. 1은 초점을 조금 멀리 두면서 화면을 크게 잡았고, 2는 그것을 조금 축소하여 이상적인 사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의 이동은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사물들의 모습을 변화있게 제시해 준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나 그 내용에서나 황혼무렵의 풍경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시인은 마지막 순간 이 풍경에 슬쩍 자신의 정서를 색칠한다. 마지막 줄의 '외로운'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한 마디 말은 이제까지 담담하게 전개되어 오던 그림에 쓸쓸함의 감정을 불어 넣으면서 작품 전체를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닌 내면적 분위기의 그림으로 만든다. 어쨌든 1930년대 이미지즘의 한 본보기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황혼이 기우는 저녁 무렵의 풍경을 또렷한 시각적 이미지로 그림을 보는 듯하게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 한 편에서 '곱다란'과 '외로운'을 제외하고는 직설적인 정서 표현이 드러나 있지 않다. 정서를 표출하는 방법에는 본디 직설, 영탄, 묘사가 있다. 그런데 김광균의 작품과 같은 모더니즘 시에서는 직설이나 영탄을 피하고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절한 소재만을 적소(適所)에 배치한다. 그리고 정서는 독자의 감수성과 지성을 통하여 환기되도록 한다. 그래서 그는, 시가 목적하는 바는 정서의 표출이 아닌 정서에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 참고사항 ] : 이미지즘에 대해 이미지즘(Imagism) : 1912년부터 1917년까지 흄, 파운드 등 영국과 미국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시 운동을 일컫는다. 이들은 정확한 일상 언어의 사용, 자유시를 쓰되 음의 효과나 억양을 무시하지 말고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명확한 이미지를 중시하되 이미지 자체의 표현을 중시할 것, 제재를 자유롭게 선택할 것, 견고하고 명확한 스타일의 시를 쓸 것, 집중이 시의 정수임 등을 강조 하였다. 이러한 영미의 이미지즘 시론은 1930년대 후반에 최재서, 김기림 등에 의해서 소개되었고, 김광균 등이 이미지즘적인 경향의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