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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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도다리를 먹으며/김광규

2008.03.31 05:50

정문선 조회 수:292 추천:23

도다리를 먹으며 - 김광규 -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 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붙었다고 웃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결코 나눌 수 없는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비판적, 참여적 ◆ 표현 :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 사물을 소재로 현실의 모순점을 비판하고 있다.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 인간이 하느님과 같거나 닮은 존재라고 하는 독선적 사고 *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 → 인간의 몸에서 한 개씩만 있는 것 *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 모든 사물을 비교하고 나누는 습성 *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 다양한 가치를 이분법적으로 양분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벽을 쌓아 서로 구분짓고 차별을 둠. *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 화합보다는 분열을 선호하는 습성 *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 자연까지도 영토와 구역으로 나눔. * 인형과 훈장과 무기 → 명령을 수행할 꼭두각시, 맹목적인 충성자, 위협의 도구 나눔과 분열을 조장하는 물리적 기제들 * 교회와 관청과 학교 → 인간의 의식과 정신을 통제하는 정신적 기제(기관)들. * 인형, 훈장, 무기, 교회, 관청, 학교 → 나눔과 분열을 고착화하기 위한 도구들 *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 나눌 수 없는 것까지도 나눔(현대물리학) *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마구 재단하다가 급기야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까지도 분리하려 드는 인간의 모습(술을 먹으면 취해서 정신과 몸이 분리됨을 말함.) *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 *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 도다리의 입장에서 보면 대칭적으로 나누어진 인간의 모습이 낯설다는 말 *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 먹으며 → 독선적이고 이분법적 인간의 잔인성 *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붙었다고 웃지만 → 술을 마시던 인간이 도다리를 비웃고 있지만 *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 편향적 사고방식에 대한 자조 *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 결코 나눌 수 없는 /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 도다리가 바로 인간이 믿고 있는 하느님의 본질이며 진정한 모습이다. 차별과 분열의 습성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말. ◆ 제재 : 도다리(중심과 주변의 대립, 지배와 복종의 대립, 가진 자와 소외된 자의 대립 같은 일체의 분열적인 삶의 모순을 타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융합과 합일의 세계) ◆ 주제 : 존재의 가치를 왜곡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분법적 사고의 인간 세태 풍자)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인간의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사고 - 인간 이성에 대한 과신 ◆ 2연 : 좌우 대칭 구조로 된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대립과 흑백논리) ◆ 3연 : 나눔과 분열의 상황(남북분단) ◆ 4연 : 이분법적, 독선적 사고를 조장하고 가르치는 물리적, 정신적 억압 기제의 양산 ◆ 5연 :편협하고 이분법적인 사고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비판 - 허위적 삶에 대한 자조 ◆ 6연 : 조화와 합일의 가치(도다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도다리 회를 먹는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사물의 진리를 찾아 내어 사회를 풍자,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세상 모든 사물을 나누고 차별하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서로를 억압하기 위한 물리적 도구들과 정신적 도구들을 만들어 분열과 차별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한다. 시적 화자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시의 뒷부분에 제시된다. 술자리에서 본 도다리는 한쪽으로 몰린 눈을 가진 희한한 모습이다.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나누고 차별하는 인간의 습성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도다리를 먹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비판하지만, 이 또한 적극적 비판이라기보다는 현실을 판단할 이성조차 마비시키기 위해 술을 마시는 자조적인 태도에 그칠 뿐이다. 이 시는 1980년대에 발표된 작품으로, 시인은 두 눈이 모두 한쪽으로 몰려 있는 도다리의 모습과 모든 존재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대립시키는 사람들의 행태를 대비하여 당대 사회에 만연했던 흑백 논리를 풍자하고 있다. 1980년대의 우리 사회는 좌파와 우파의 대립, 현실과 이념의 대립 등 사고의 경직성과 획일성이 만연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우리 사회에는 이념의 대립과 같은 관념에 집착하는 태도보다는 현실의 문제와 자신의 내부 모순에 주목하는 태도가 가장 필요하였다. 시인은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흑백 논리의 허구성을 일상 언어로 쉽게 표현하여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기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 퍼온 글 사람은 날 때부터 대칭 구조로 태어난다.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오른쪽 눈과 왼쪽 눈, 또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오른쪽과 왼쪽, 즉 둘로 나누려고 노력한다. 가령, 우리나라도 남북으로 나뉘고, 사상이나 이념도 역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한다. 또한 이러한 양분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김광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런 단순한 양분이 아니다. 그는 도다리를 먹는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한다. 감상에 젖거나 종교적 회의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다. 한 쪽으로 몰려 있는 도다리의 눈, 이것이 이 시의 포인트다. 이념, 사상, 혹은 모든 개념이 둘 또는 여럿으로 나뉘지 않고 한 곳에 뭉쳐 있는 도다리의 눈은 나누기를 좋아하는 인간으로선 무엇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가 없다. 인간중심적, 독선적 사고를 가진 인간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오른쪽 왼쪽 혹은 왼쪽 오른쪽으로도 나눌 수 없는 도다리를, 아니 도다리의 눈을 보면서, 시인은 왜 사람들은 항상 파가 갈라지게 될까, 왜 대칭구조로, 혹은 비대칭구조로 갈라져야만 할까를 깊이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왜 사람들은 도다리를 먹으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도다리가 자신들과는 다르고 또한 그것을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웃고 있는 것인지…,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