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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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도봉/박두진

2008.03.31 05:55

정문선 조회 수:120 추천:19

도 봉 - 박두진 -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청록집>(1946) - 해 설 [ 개관정리 ] ◆ 성격 : 사색적, 관조적, 서정적 ◆ 표현 ㉠ 박두진의 초기 시가, 시행을 작위적으로 늘이고 구체적인 사물들을 연속 배치하는 특징을 보여 주는 것 인데, 그런 경향에서 벗어난 가장 이질적인 구성법을 보여줌. ㉡ 원경에서 근경으로 접근해 가는 구성법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방식 ◆ 중요시어 및 시구 * 1연 ~ 3연 → 시적 자아가 자리한 공간적 · 시간적 배경이 제시되어 있는데, 고독과 적막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다. * 누구도 없이 → 부를 대상도 없이 * 울림은 헛되이 /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 인적 끊긴 곳이기에 메아리는 대답없이 돌아온다. 고독의 심화를 뜻함. *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 화자의 내면으로 시선이 이동되고 있음. 해가 진 뒤의 어둠 속에서 인간은 더욱 고독해지고, 자아는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생각하게 됨. * 그대 → 일체의 역사적 사건을 포하한 모든 것들을 초월한 절대자(조국) 화자에게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다 주는 존재 *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 슬픔의 내면적 수용. 자아를 고통스럽게 한 '긴 밤과 슬픔'이 '그대를 위한다'는 긍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됨. ◆ 주제 ⇒ 구원(그대)을 그리는 괴롭고 고독한 심정. 기다림이 안겨주는 쓸쓸하고 막막한 심정 인생 본연의 외로움과 적막함 ◆ "자연"의 이미지 ― 이 시에서의 자연은 관조의 대상도, 도피와 안식을 위한 자연도, 선비의 비분을 달래기 위한 매개체도 아니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윤리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서정적 자아의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 시상의 흐름(짜임) ] ◆ 기(1∼3행) :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고독한 가을산의 어스름(배경설정) ◆ 서(4∼7행) : 대답없는 메아리와 밀려드는 밤(외로움과 공허감) ◆ 결(8∼10행) : 화자의 내면적 독백(삶의 고통과 구원에의 갈망과 기대)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이 시의 분위기는 매우 침울하다. 화자의 심정이 그렇고, 화자가 서 있는 배경도 쓸쓸하기 짝이 없다. 1,2연에서는 화자가 있는 공간적 배경이 소개된다. 적막한 가을 산의 모습이다. 산새도 구름도 찾지 않고 인적 또한 끊어진 가을 산의 고독이 노래된다. 화자가 빠져 있는 고독감이 가을 산의 쓸쓸한 정경으로 드러났다는 말이다. 4연에서, 화자는 그대를 생각하며 가슴에 맺힌 그리움으로 한껏 외쳐 불러 보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만 빈 골로 되돌아오는 공허감에 젖는다. 이런 공허감과 절망의 인식은 시간이 갈수록(밤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화되어 8연에서는 직접 노출된다. 삶이란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괴롭기만 하여 미래에의 전망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9연에 이르면 화자의 슬픔의 원인이 드러난다. '그대 위하여' 긴 밤과 슬픔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슬픔은 화자로부터 근원적으로 솟아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말미암아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위하여'라는 낱말은 행동적 의미로 쓴 것은 아니다. 만약 그대를 위하여 절망의 밤을 가진다면, 이 밤은 그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능히 견딜 수 있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시의 문면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태도는 적극적이거나 행동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절망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따라서 '위하여'의 의미는 '때문에'의 의미로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대로 인하여 나에게 슬픔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슬픔의 원인은 그대의 부재 상황이다. 그리하여 10연에서는, 나는 이 외롭고 쓸쓸한 밤에 애태우는데, 그대는 나와 무관하게 어느 마을에서 쉬느냐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