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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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등산/오세영

2008.03.31 06:04

정문선 조회 수:137 추천:26

등 산 - 오세영 -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절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의 벌레처럼 무명(無明)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바람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비유적, 상징적, 불교적 ◆ 표현 : 구체적 상황(등산)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전함. 이미지의 대립(빛 : 정상, 해탈의 경지, 천상 ⇔ 어둠 : 절벽, 암벽, 무명의 상태, 지상)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자일을 타고 오른다. → 산을 오르고 있는 화자의 모습(불안하고 힘들게 오르는 모습) * 생애의 중량 → 삶의 무게 * 확고한 / 가장 철저한 믿음 → 정상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믿음 * 한때는 흔들린다. → 화자가 아직은 무명(無明)의 상태에 있음을 의미함. * 무명 → 절벽,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무지의 상태 * 빛 → 정상(목표),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 * 무명의 벌레 →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화자의 모습. 겸손 * 결코 쉬지 않는 →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화자의 모습 *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 삶을 쉽게 포기할 수도 삶을 쉽게 초월(해결)할 수도 없다는 인식으로, 삶에 대한 진지함과 신중함의 자세가 나타난다. * 별, 꽃, 이슬, 세상의 모든 것 →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대상 화려하지만 금방 사라지는 존재. 세상의 유혹. 욕망의 대상 * 내 것이 아니다. → 삶의 목표(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유혹과 욕망의 대상들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됨. *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 →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감정 *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화자의 모습 * 다만, / 가까이, / 가까이 갈 뿐이다. → 정상에 도달하는 그 자체보다 도달하기 위해 가는 과정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 제재 : 등산 → 정상(목표)에 이르는 과정 ◆ 주제 : 삶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목표보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인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흔들리는 삶 ◆ 2연 : 쉬지 않고 빛을 찾는 삶 ◆ 3연 : 삶에 대한 진지함과 겸손함 ◆ 4연 : 삶의 목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삶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삶이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소박한 비유에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는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이 화자를 내세워 빚은 내면세계란 등산에 있어 정상 등정이 목표(소유)야 될 수 있을지언정 목적인 아니듯이, 삶에 있어서도 목표(소유)보다는 목적(삶 자체에 대한 열정)에 있다는 깨달음이다. 힘든 시련, 내외적 유혹 등으로부터 흔들림 없이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기 다짐이자 생에 대한 재인식이다. 깨달음의 여정을 작품의 전개 과정에 따라 살펴볼 때 1, 2연과 3, 4연을 대조해 분석해 볼 수 있겠다. 1, 2연에서는 이제까지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 드러나 있고, 3, 4연에서는 성찰의 결과 즉 주어진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표현되어 있다. 이 모든 시적 진술은 산을 오르는 것, 즉 제목인 '등산'에 비유되어 시상과 주제가 전개되고 있다.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마다 화자의 삶의 가치도 흔들린다(1연 2~5행). 화자는 밧줄(자일)에 몸을 의지하여 산을 오르고 있다. 정상을 향해 오르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믿음의 흔들림은 그가 '무명(無明)' 속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무명'은 '빛이 없다'는 사전적인 뜻을 지녔으며,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는 말이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을 '벌레'로 낮춰 좀더 부지런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기도 한다. 화자는 삶이 어둠 속에서 암벽을 타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지만, 깨달음을 얻은 해탈의 경지가 현실 포기나 초월이 아님을 또한 재인식한다. 삶이란 서두를 것도 없으며, 행·불행을 따질 것도 아니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작품 전면에 드러난 화자는 해탈한 사람이 아니라 무명 속에서 빛을 찾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그치는 의지가 강한 일물로 형상화되었다. ▶ 읽을거리 이 시는 등산을 하는 인물의 행위를 묘사하여 삶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등산은 지상에서 산의 정상, 즉 천상을 향해 오르는 행위이며, 천상에 이르기 위한 시적 화자의 노력은 지상에 속한 가치를 지양하고 천상에 속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시적 화자가 속해 있는 지상은 무명의 상태이며, 그는 '빛을 찾아서' 절벽을 더듬고 있다. 즉, 지상과 천상이라는 의미의 대립 구조가 어둠과 빛이라는 색채의 대립 구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더듬고 있는 절벽(암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로, 이는 세상사의 유혹과 번뇌로 빛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무지의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그가 절벽을 더듬으며 오르고 있는 산의 정상은 빛의 세계로,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그 곳에 '다만 가까이 갈 뿐'이라고만 한다. 시적 화자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며, 이는 시인이 궁극적으로 깨달은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시적 화자는 정상을 향해 오르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믿음의 흔들림을 통해 자신이 '무명'속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빛이 없음'이라는 뜻의 '무명'은 어둠과 같은 무지의 상태, 즉 해탈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이는 본래 불교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하는 고제, 집제, 멸제, 도제의 근본에 통달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무명은 인간이 겪는 것 중 가장 근본적인 번뇌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오르는 과정에 있으므로 아직은 무명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무명의 상태를 벗어나 빛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