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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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목숨/신동집

2008.03.31 15:07

정문선 조회 수:165 추천:19

목 숨 - 신동집 - 목숨은 때 묻었다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表情)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광년(億萬光年)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追憶)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體溫)에 젖어 든 이름들 살은 자(者)는 죽은 자(者)를 증언(證言)하라 죽은 자(者)는 살은 자(者)를 고발(告發)하라 목숨의 조건(條件)은 고독(孤獨)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 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白鳥)는 살아서 돌아오라. - <서정의 유형>(1954) - 해 설 [ 개관정리 ] ◆ 성격 : 존재론적, 의지적, 주지적, 형이상학적, 명상적 ◆ 표현 : 명령형 종결어미를 통한 선언적인 표현(화자의 반성에의 의지를 강화하는데 기여) 형이상학적인 계열의 시임에도 불구하고, 발상이나 언어구사에 있어 생경함이나 난해함이 없음 ◆ 중요 시어 및 시구 * 1연 → '목숨이 때묻었다'는 '흙이 된 빛깔'과 '황폐한 얼굴'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표현임. 전쟁으로 인한 목숨과 생명에 대한 회의로부터 비롯됨. * 산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 살아 남아 있는 자는 허무하고 처절하게 죽어간 생명에 대한 증언을 하라.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하고 있다. * 죽은 자는 산 자를 고발하라 → 죽은 자들이 고발할 내용(온갖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했던 구차한 모습)에 대해 반성하라. 살아 남은 자의 부끄러움이 나타남. *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 → 살아 남은 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바로 죽은 자에 대한 죄의식이기에, 목숨 의 조건은 고독한 것이다.(삶의 의미는 죽음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을 통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 * 백조 → 반성적 삶에 투철함으로써 성취된 삶. '순수한 생명'의 심상 ◆ 주제 ⇒ 생명의 고귀함과 순수한 삶에 대한 동경 [ 시상의 흐름(짜임) ] ◆ 1연 : 목숨의 황폐함(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죽음보다 못한 삶) ◆ 2연 : 삶에 대한 소망(생명에의 질긴 의욕) ◆ 3연 : 목숨의 소중함 ◆ 4연 : 죽은 목숨에 대한 애틋함. ◆ 5연 : 목숨의 조건(살아남은 것에 대한 치열한 반성적 자세) ◆ 6연 : 미래의 삶에 대한 낙관적 전망 ◆ 7연 : 순수한 삶의 구현 소망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시 <목숨>은 1950년대 한국의 특수상황에서 거둔 수확의 하나로, 전쟁시, 참여시 또는 순수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가 범람하는 분위기에서 원격조정된 '신동집 스타일'의 한 표본을 보게 되는 작품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의 존재론적 갈등이 형상화된 작품인데, 시적 화자는 전쟁이라는 민족적 수난과 폐허 속에서도 삶의 의욕과 목숨의 영원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존재론적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1연에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얼굴에서 죽음보다 못한 삶의 황폐함 곧, 절망과 죽음의 상황을 발견해 내고 있다. 2연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목숨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3연에서는 존재론적 한계에서 맞이하게 되는 인간 존재의 구원의 빛을 발견하고 있다.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의 뿌리를 내리며 빛을 발하는 소중한 개인의 생명의 불빛을 보는 것이다. 4연에서는 전쟁을 치르면서 육체는 사라지고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죽은 자들의 흔적이 제시되고 있다. 5연은 시대를 꿰뚫어 보는 자의 예지가 응결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진정한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선언적 어투를 사용한다. 인간다운 삶이란 육체적인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죽어간 자들의 처절한 삶을 증언하고 온갖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했던 구차한 모습들을 반성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는 단언적 표현은 이러한 치열한 반성적 자세를 갖출 때 필연적으로 찾아들 수밖에 없는 존재의 고독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6연과 7연에서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전쟁의 포화로 점철된 시대와는 또다른 시대가 올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제시된다. 자신의 목숨이 빚어낼 한많은 생애가 모양도 없이 지워지는 죽음의 순간에 '나의 백조'로 표상되는 자신의 진정한 삶이 소생하기를 기원한다.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라는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 : 김윤식 교수의 시 특강에서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 간다. 그들의 죽음은 필연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이다. 어떤 사람은 살고 어떤 사람은 죽는다. 삶과 죽음은 순식간에 한치의 차이로 결정된다.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누가 총을 맞을런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목숨의 필연성과 소중함을 믿었던 사람들은 여기서 실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삶과 죽음의 차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광포한 속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 간 자를 위해 산 자가 할 일이란 그 죽음의 우연성과 전쟁의 비극성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죽은 자에 대해 부끄럽고 죄가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결코 만나지 못한다. 산 자는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다. 목숨은 고귀하고 존엄하다. 그러나 산 자는 그 목숨 때문에 죽은 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살아 있음이라는 삶의 조건 자체가 부끄러움의 원천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고귀한 목숨을 전쟁은 한순간에 제거해 버린다. 산 자의 고독은 목숨을 지닌 것의 부끄러움과 인간의 삶의 조건의 허망함 때문에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