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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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귀고/유치환

2008.03.28 08:00

정문선 조회 수:323 추천:20

귀고(歸故) -유치환-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松栢)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트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가면 우리 집은 유약국 행이불언(行而不言)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冊曆)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新刊)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 <생명의 서>(1947) -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감상적, 감각적, 회고적, 토속적 ◆ 표현 : 귀향하는 과정을 공간의 이동에 따라 드러냄. 공간의 수축작용이 나타남. 포근하고 다정한 어조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사포 → 머리에 쓰는 모자의 일종 * 똑딱선 → 발동기로 움직이는 작은 배, 통통배.(향토성을 드러내는 소재) * 선창가 → 물가에 다리처럼 만들어 배가 닿을 수 있게 한 곳의 근처(향토성을 드러내는 소재) * 길보다는 사람이 많았소 →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 * 트던 → 트고 지내던, 허물없이 지내던 *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 고향의 하늘은 고향을 일깨워주는 표지(상징물)처럼 다정하게만 느껴지고 *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 →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새롭게 개발되고 들어선 신작로는 낯설게만 느껴지고 * 창가하고 → 노래하고 * 유약국 → 유치환의 외조부는 통영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여 상당한 재산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유치환의 아버지 유준수도 한의학을 배워 한약방을 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행이불언 → 아버지의 과묵한 성격 * 돋보기 → 아버지의 시간을 은유한 말.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께서 돋보기를 끼지 않았을 테니까. * 책력 → 천체를 측정하여 해와 달의 움직임과 절기를 적어 놓은 책, 역서나 달력. * 헌 책력 → 흘러간 어머니의 시간을 비유한 말 *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 사랑을 베풀며 늙어가신 어머니 * 신간 → 헌 책력과 대조되는 말로 화자의 시간을 비유한 말 * 그림책 → 어린 시절의 느낌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함. * 나는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 화자는 신간을 읽으며 어린 시절 어머니 곁에서 그림책을 보았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즉, 어머니 곁에서 비로소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우리 집 → 근원으로서의 이미지, 만족감이 충만한 공간, 긍정적인 공간이며 행복한 기억이 머물고 있는 곳 ◆ 제재 : 고향 ◆ 주제 : 고향에 돌아와 느끼는 감회 [시상의 흐름(짜임)] ◆ 1 ~ 2행 : 고향의 선착장에 도착함. ◆ 3 ~10행 : 고향집으로 오는 길의 풍경과 어린 날의 회상 ◆ 11~14행 : 부모님 옆에서 진정한 고향을 느끼는 '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선창가에서부터 고향집에 돌아와 부모님에게 절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시이다. 일상적 의미의 공간인 고향을 시적 공간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그리워하던 고향에 똑딱선을 타고 도착해서는, 고향에 온 설레고 들뜬 심정을 3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하나의 문장처럼 호흡이 이어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오랜만에 고향 풍경을 맛보고 부모님을 만나는 화자의 즐겁고 경쾌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과 '신간을 보는 나'의 대비를 통해 어머니의 품에 비로소 '그림책을 보는 아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즉 잃어 버린 순수를 찾아 주는 '어머니의 품'을 통해 고향을 느끼고 있음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청마 유치환이 <귀고>에서 그리고자 하는 고향은 일상적 공간(현실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의 모습을 묘사하거나 고향에 대한 시인의 정서나 생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고향이 지닌 의미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고향이란 무수한 경계 영역를 뛰어 넘어 끝없이 수축해 들어가서 발견할 수 있는 구심적인 공간, 그곳에는 아버지 어머님이 계시고 화자는 출생의 모태인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린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진정한 고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 공간은 많은 경계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귀고>에서는 대체로 다섯 개의 경계 영역이 나타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경계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는 '선창가'이고, 두 번째 경계는 마을 안과 마을 밖을 나누는 '돌다리'이며, 세 번째 경계는 무표지로 나타나고 있지만 마을과 유약국을 나누는 '담'이 될 수 있으며, 네 번째 경계는 부모님과 나를 나누는 '몸'이라고 하는 생체적 경계이며, 다섯 번째 경계는 '마음'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내면의 경계이다. '절을 하다'와 '절을 받다'라는 행위는 아버지와 나의 경계 영역을 넘어들어가는 것이며, 어머니 곁에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신간책을 그림책처럼 보는 것은 어머니와 나의 경계를 완전히 뛰어넘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은 이같이 많은 삶의 경계 영역을 돌파하여 보이지 않는 내부의 구심점으로까지 돌아가려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행위와 역사는 크게 말해서,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원심 운동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구심 운동으로 되어 있다. 그 원심운동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객지(타향)'이고, 그 구심 운동에서 탄생되는 것이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간의 수축 작용 → 넓은 바다가 남쪽으로 트인 조각난 하늘과 송백의 산으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돌다리와 집들이 들어 있는 마을로, 그 마을은 다시 유약국이라는 고향집으로 좁혀진다. 이러한 공간의 수축 작용은 집에서 대문으로, 대문에서 문지방으로, 문지방에서 방안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그 내부의 구심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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