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10,612

이달의 작가

월훈/ 박용래

2008.04.02 08:43

정문선 조회 수:334 추천:20

월 훈(月暈) - 박용래 -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꽁깍지처럼 후미진 외딴 집, 외딴 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 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문학사상>(1976) -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향토적, 토속적, 서정적 ◆ 표현 : 명사 종결 구문을 통해 정감의 깊이를 한층 더해 줌. 감정이입을 통해 노인의 고독을 심화시킴. 한자어를 배제한 토속어와 경어체 구문의 사용 원경에서 근경으로 시선을 이동해 가며 시상을 전개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허방다리 → 함정 * 갱 → 구덩이 *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 →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배경 *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 원경에 해당하는 배경으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띰. * 갱 속 같은 마을 → 현실 세계로부터 차단된 신비스러운 공간 *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 순식간에 해가 지는 상황, 짧은 겨울 해가 지는 상황 * 창문은 모과빛입니다 → 향토적이고 싱그러운 정서를 환기시킴. * 기인 밤입니다. → 노인이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는 시간 *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 시간의 경과 * 겨울 귀뚜라미 → 노인의 정서가 이입된 대상 *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 노인이 느끼는 고독감의 깊이를 절절하게 드러냄. *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 → 시적 대상이 '노인'에서 '월훈'으로 변화하면서 마무리됨. * 월훈(달무리) → 쓸쓸함과 적막감을 자아내는 소재임. ◆ 주제 : 신비스럽고 토속적인 산촌의 풍경과 노인의 적막함과 외로움 겨울의 외딴 마을과 노인의 고독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멀리서 바라보는 마을(원경) ◆ 2연 : 모과빛 창문의 외딴 집(근경) ◆ 3연 : 잠 못 이루는 노인 : 귀를 기울임 - 기다림의 정서 ◆ 4연 : 겨울 귀뚜라미의 통곡(감정이입) ◆ 5연 : 달무리 진 산촌의 풍경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깊은 산 속 외딴 집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의 외로움과 허전함이 절실하게 묘사된 서정시다. 화자는 시적 대상인 노인의 모습을 그려 내면서 깊은 산골 노인의 외로운 삶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홀로 사는 노인의 깊은 고독과 그리움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의 배경인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은 현대 문명 사회와 차단되어 있는 토속적인 공간이다. 즉, 신비로우면서도 동화적인 세계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세계가 아닌, 원시적이면서 토착적인 세계다. 노루 꼬리만큼 짧디짧은 겨울 해가 저물면 마을의 집들이 이윽고 봉당의 불을 매다는데 이처럼 외딴 마을에서도 후미진 곳에 위치한 노인의 외딴 집 창문에는 모과빛과 같은 불빛이 밤이 이슥토록 켜져 있다. 여기서도 토속어의 사용으로 향토적인 서정을 불러일으키는 박용래의 시풍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모과가 연상시키는 싱그러운 이미지는 늦은 밤의 불빛을 정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노인은 깊어 가는 겨울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 무, 고구마를 깎으며 겨울밤의 바람 소리에 귀를 모은다. 짚단과 짚오라기의 서걱거림, 처마깃 새의 작은 날개짓까지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을 찾아줄 이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고는 겨울밤의 절망적인 외로움에 파묻히고 만다. 노인의 이러한 행위는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깊이를 증폭시켜 주는 동시에, 시인이 가지고 있는 섬세한 감각을 드러내는 징표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바깥세계와 완전히 단절돼 있는 벽지의 겨울밤, 노인 혼자 껴안아야 하는 막막한 외로움과 막연한 그리움은 그 질감을 더해 가는데, 시인은 섬세한 감각으로 노인의 행위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서술한다. 노인의 밭은 기침 소리가 그칠 즈음, 겨울 귀뚜라미는 벽 속에서 떼를 지어 울어댄다. 벽이 무너지라고 울어대는 겨울밤의 귀뚜라미는 여느 귀뚜라미로부터 홀로 떨어져 외롭게 우는 귀뚜라미로, 겨울밤의 농밀한 적막감을 깨뜨릴 만큼 크게 들린다. 이 귀뚜라미는 노인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로, 노인의 고독감을 켜켜이 쌓아놓는 역할을 맡는다. 다시 말해 혼자가 된 귀뚜라미와 어떤 내력인가로 해서 가족도 없이 홀로 지내게 된 노인의 처지가 겨울밤을 매개로 절묘하게 겹쳐지고 있다. 시의 말미에는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월훈이라는 시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나는데 창호지 문살에 달무리가 떠오르면서 겨울밤은 더욱 깊고 고요하게 기울어간다. *출처 : 이만기의 국어나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4 이 사진 앞에서/ 이승하 정문선 2008.04.02 574
143 대숲아래서/나태주 정문선 2008.03.31 501
142 고고 /김종길 정문선 2008.03.28 496
141 성에꽃/ 최두석 정문선 2008.04.03 474
140 멸치/김기택 정문선 2008.03.31 453
139 우리 동네 구자명 씨/ 고정희 정문선 2008.04.02 452
138 봄/ 이성부 정문선 2008.03.31 430
137 강강수월래/김준태 정문선 2008.03.27 377
136 월명/ 박제천 정문선 2008.04.02 369
135 국수/백석 정문선 2008.03.28 340
» 월훈/ 박용래 정문선 2008.04.02 334
133 귀고/유치환 정문선 2008.03.28 323
132 손 무덤/ 박노해 정문선 2008.04.02 320
131 꽃 피는 시절/이성복 정문선 2008.03.30 318
130 압해도 8/ 노향림 정문선 2008.04.02 316
129 새/ 김지하 정문선 2008.04.03 315
128 작은 부엌 노래/ 문정희 정문선 2008.04.02 311
127 샘물이 혼자서/ 주요한 정문선 2008.04.03 308
126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정문선 2008.04.02 298
125 도다리를 먹으며/김광규 정문선 2008.03.31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