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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2 05:56

(칼럼)신앙생활과 문학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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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과 문학활동

  오정방
  

                                    

먼데 것은 접어두고, 가까이서만 보더라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도 하고 취미활동도 한다.
직장생활은 생계를 위하여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부정한
것이 아니라면 비록 힘든 노동이라 할지라도 숭고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삶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려면 거룩한 신앙생활의
바탕 위에 건전한 취미활동을 곁들이는 것이 보다 보람되고 윤택한
삶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에서 나는 취미활동이라고 말했다. 습관과 성격에 따라서 취미는
다양하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원래의 취미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환경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는 이 취미의 종류는 너무나
많고 다양해서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지면도 아니기
때문에 덮어두기로 하고, 다만 나의 경우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였고 이후 군복무를 할 동안이나
제대후 대학시절이나 결혼생활을 십 수년 하기까지 근 25년 동안을
신앙생활 반, 취미생활 반으로 지내오다가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내 나이 불혹에 접어든‘80년도부터이니까 햇수로는 25년이
되는 셈이 된다.
‘65년에 군복을 벗고,‘68년에 결혼하고, 이후‘79년까지의 근 15년
동안 나의 취미는 등산이었다. 서울근교의 북한산으로부터 북쪽으로
설악산, 남쪽으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은 유명한 산은 거의
다 올라가 보았다.
일본 나가노껜에 있는 기다알프스(3,190m)나 대만 중부에 있는 옥산
(3,997m)을 등반한 일도 다 이 15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한 때 월간지 <등산>을 발행하면서 우리나라 문공부에 등록된
최초의 산악기자(기자증 번호 라1158-1호) 생활을 하였으며 1968년
사단법인 한국산악회(1945년 창립)에 입회하면서 조직과 기구가 확장
됨에 다라 초대 사무국장과 그 뒤 이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이 때에는
틈만 나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내리 달렸다.
복잡하고 마음이 편치 못할 때에도 산에만 들면 마음이 편해지고 복잡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곤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겐 두고
두고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79년 미국 뉴햄퍼셔 주에 있는 킹돔 놋치라는 산장에서 개최된 제24차 세계산악연맹(UIAA) 총회에 이은상 회장님을 수행하여 참석한 뒤 귀국해서는 신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드디어 다음해인 ‘80년 1월 첫주부터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강남성결교회에 출하게 되면서부터 성수주일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산친구들은 점점 만남이 줄어 들었고 그 대신 교우들과 만남이 잦아졌
으며 비록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지는 않아도 성경안에서 수 많은 산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골고다산까지 셀 수 조차 없는 산들을 나는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올랐다. 그러면서도 누가 취미를 물으면 여전히‘등산’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고 적어도 미국 이민을 오기까지는 주일을 빼고는 틈이 나면 산에 오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산은 그만큼
나에게 큰 비중으로 다가와 있었다.

미국 오레곤 주로 이민 온지도 지난 달인 9월 27일로 어언 17주년을
지났다. 여기와서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신앙생활이었기 때문에
‘등산’이란 취미는 살리지 못했다. 멀리서 산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면 자동차로 산 속에 들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발로 걷는 등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 이미 나는 새로운 취미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학시절에 습작시를 학보에 발표하기도 했고 또 산악기자 시절에 기사쓰는 일과 잡지를 발행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글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지난 ‘98년 7월 어느 날,
우리의 결혼 30주년을 100일 앞두고 아내에게 건네줄 선물을 생각
하다가 편지를 써서 아내 몰래 책으로 엮어주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손을 댄 것이 드디어 결혼기념일에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을 선택
하리>란 책을 아내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책 한 권이 나의 삶에
이렇게 큰 획을 긋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이 책 서평이‘기독신문’에 게재된 뒤로 그 해 12월에 서북미에 문학
협회가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필자는 한국과 미주문단에 시와
시조로 데뷰하는 계기도 되었다. 이후 회갑을 맞으면서 2003년에는
첫시집 ‘그리운 독도’를 상재하였으며 이 시집이 또 인연이 되어
서울의 문단 중견시인들과 합동으로 사화집‘영혼까지 독도에 산골
하고’를 발간하게도 되었다.
문인으로서의 경력이 쌓이면서 자천 타천으로 미주한국문인협회와 재미시인협회 회원이 되었고 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2002년 6월에는 이 지역의 문학인들과 함께‘오레곤문학회’의 창립을보게도 되었다.
오레곤문학회는 7명이 시작하여 지금 회원수가 배가되었다. 문단에 데뷰하지 않은 동호인들도 상당수 있다. 그리고 거의 대개가 크리스찬들이다. 저들의 취미가 또 다른 것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글쓰는
것이 취미이기 때문에 문학회 활동을 자청했다고 본다. 시를 쓰거나,
수필을 쓰거나 아니면 그 어느 장르를 이용하여 글을 쓰거나 간에 믿는 사람들은 충분히 글로써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성시라고도 하고 신앙시라고도 하는데 가령 시를 통하여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다면 취미활동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에 가능만 하다면 적극 글쓰기를 권하고 추천하는 바이다.
문학적인 면에서 보면 성경 전체가 하나의 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바로 최초의 시인이 아니신가?

                                                       <2004. 10. 5>



  
*이 글은 알로하에 소재한 벧엘장로교회의
계간‘벧엘’지의 청탁으로 쓰여진 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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