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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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영상글/일탈, 마음의 여유

2004.11.15 03:58

오연희 조회 수:336 추천:55

일탈, 마음의 여유 주인이 괜찮은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함께 마신 술. 새벽에 일어나 읽은 좋은 책, 밑줄...... 장정이 마음에 드는 공책과 검은색 파커 만년필. 가끔 글쓰기, 일기. 토요일의 등산, 땀, 그리고 목욕. 새벽의 노량진 시장, 아이들이 좋아하는 기어다니는 꽃게. 해질녘 여름 시장 좌판 위의 우뭇가사리 넣은 콩국. 인사동 툇마루의 막걸리와 골뱅이, 아내와 함께한 대작. 여행, 산 속에서 지낸 밤, 쏟아지는 별. 속이 가라앉는 바다내음과 소리, 물 위로 튀는 고기 한 마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내 일상을 지켜주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일상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 그 팍팍한 생활에 물을 뿌린다. 이 작은 것들이 중요한 것이다. 돈이 많이 없어도 할 수 있고, 거물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다. 잠시 마음을 풀어놓으면 찾아주는 것들이다. 마음의 여유만이 일상의 여유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상의 건너편에 서 있다가 우리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알아서 강을 건너와 우리를 잠시 쉬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 자체가 바로 일상의 일부인 것이다. 일상 속에서 찾은 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자리함 속에 이것들을 잘 짜넣음으로써 그 수수함에 약간의 화려함과 멋을 더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것들은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에 달라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조금 바꾸어줌으로써 비로소 나를 데리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가보아도 따라오는 것은 나이다. 같은 나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보아도 그곳은 같아진다.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캐러밴과 함께 헤매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워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탄불의 어두운 어느 카페에서 몇 개월의 오랜 여정의 피로를 술 한잔으로 풀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면 히말라야가 보이고, 그 산 위의 눈이 녹아 내려 이룬 호수가 보이는 피시테일 로지에서 며칠을 지내며, 둥근 보름달이 그 호수에 비치는 것을 보고 싶다. 아니면 가족 모두 캐나다나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곳으로 이민을 갈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삶이 있는 것은 또한 아니다.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며,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침에 먹은 음식이기도 하고, 저녁에 좋은 사람과 나눈 빛깔이 고운 포도주이기도 하다. 마음속의 꿈이기도 하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기도 하다. 슈퍼에서 산 몇 마리의 코다리 명태이기도 하고, 스칠 때 얼핏 나눈 웃음이기도 하다. 삶은 작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은 세부적인 것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일상의 일들이 모자이크의 조각처럼 모여 한 사람의 삶을 형상화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루하루는 전체의 삶을 이루는 세부적 내용이다. 바로 일상이 작은 개울이 되어 강처럼 흐르는 삶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이 그냥 흘러가게 하지 마라. 내일이 태양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것은 내일을 위한 것이다. 오늘은 영원히 나의 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 아쉬워하라.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보내버린,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라. 오늘은 그러므로 어제와 다르게 느끼는 날이다. 어제와 다른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날이다. 날마다 새롭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때 세상은 빛나는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그 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의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대열 속에 끼지 못하면 초라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의사가 되어 돈을 벌고, 변호사가 되어 절박한 서민의 억울함을 수입의 원천으로 삶아야 잘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금 이 고리를 풀지 못하면, 우리는 이 오리떼 속에서 영원히 '오리가 되지 못하는 오리'가 되고 말 것이다. _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중에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