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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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살며 생각하며] 봉사의 힘
오연희 시인


지난 토요일 샌디에이고를 다녀왔다. 화마의 자국이 선연한 검게 그을린 산과 아침햇살 출렁이는 바다를 끼고 5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불에 타오르는 산을 대책 없이 바라보았을 바다 산도 바다도 서로 속만 탔겠구나…혼자만의 상상에 젖어보았다.

아는 목사님 자제분의 결혼 리셉션이 있어 가는 길이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문인 몇 분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몇 가정에 직접 통화를 했던 바라 그 쪽 상황은 대략 알고 있었다.

불길이 극심했던 지역 중 한 곳이 랜초 버나도 일 것이다. 우리 가정이 5년 동안 살았던 정든 곳이기도 하다.

이웃으로 살던 분들이 궁금해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랜초 버나도 옆동네인 파웨이 지역에 사는 잘 아는 선배언니와 연결이 되었다. 선배네 집은 다행히 타지 않았지만 같은 (미국) 교회에 다니는 57가구가 이번 산불로 집이 완전히 다 타버렸다고 했다.

대피하라는 명령에 따라 선배는 호텔로 가려고 했지만 빈 호텔이 없어 퀄컴 스타디움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기쁨이 가득찬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질서'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질서있게 행동하는지 '정말 살만한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 다음은 '봉사'라고 했다. 봉사자들의 대부분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젊은 층으로 구세군이나 적십자 같은 봉사단체는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일반인 봉사자가 많았다. 음식을 바로 요리해서 가져왔고 빵이나 음료수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선배는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려움은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또 어떻게 도와주느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봉사자가 넘치는 것을 보며 미국의 힘이 느껴지더라며 선배도 앞으로는 그동안 무심했던 기부와 봉사에 마음을 써야겠다고 했다.

결혼 리셉션장에서 오래 전의 이웃 분들과 9년 만의 해후를 가졌는데 산불이 자연스레 화제거리가 됐다. 이런 저런 걱정되는 집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퀄컴에는 이재민보다 봉사자가 많았다네' '담요랑 물이랑 한 밑천 장만했다네' 등 우스개소리도 했다. 하지만 이십년 동안 샌디에이고에 살았어도 산불이 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며 염려 가득 담은 대화로 끝을 냈다.

샌디에이고는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적이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던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샌디에이고! 이번 화마의 자국을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 그들의 질서의식과 봉사정신이 굳건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신문발행일 :2007. 11.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