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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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중앙/나이가든다는것은

2007.08.31 06:04

오연희 조회 수:539 추천:53

저의 시어머님은 현재 89세 십니다.
작년 5월 93세셨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남편이 7남매의 막내이니 전 막내 며느리지요.

제가 이번에 미국떠나 오기 전인 이주전 만해도 그렇지 않았는데(종종..전화상으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거던요.)제가 여기온 며칠동안 지켜보니 시어머님은 통..말을 알아들으시질 못하십니다.

제가 외출했다가 돌아와선 현관벨을 눌리고 문을 두드리고 온갖 난리를 쳐도 들으시질 못하셔서 문을 열어주질 않습니다.
한참을 그러다가 이웃에 사시는 사촌시누이 집에가서 문을 열어 놓으라고 전화를 드려서야 들어가곤 합니다.

시어머님은 한탄을 하십니다.
내가 젊을때는 몰랐어..
어른들이 왜 귀가 안들리고 온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다고 그러시는지를...그때 당신 생각엔 그분들이 거짓말하는것 같았어..그런데..말이야..그런데..
이렇게 시어머님은..당신의 현재의 상태에 답답해 하시고 속상해 하시고 계십니다.

60 이 넘어신 시누이는 되려..
아니...나이가 들면 다 그런거지..왜 자꾸 저러시는지 몰라...하시면서 성가셔 하시네요.
우선 시누이 자신도 큰 수술을 하셔서 몸이 불편하시거던요.

며칠전에 구미 친정갔을때의 일이 떠 오릅니다.

제가 저녁을 먹고 일좀 보고 오겠다고 하곤 나가서
오래전 남편과 첨 만났던 은행다방에도 가보고(그 다방이 아직도 그자리에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동네 구경도 하면서 이것저것 좀 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PC방에 가서 이곳에다가 글도 올리고 했지요.
그러다보니 후딱 3시간이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3시간동안 친정 부모님은 걱정이 늘어져 계셨습니다.
워낙 방향감각이 둔한 딸인걸 아시는지라..
혹시 길을 잃어버렸나 아님 누가 납치해갔나..싶어서 파출소에 신고하고 아버지는 제가 나간후 곧바로 저를 찾으러 다니셨다고 했습니다.

전...제 볼일다보고 저녁 10시쯤 집에 왔더니..
엄마는 파출소에 딸 돌아왔다고 전화하고 아버지는 아직도 딸 찾느라 나가셔서 집에 안계셨습니다.
전..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엄마..!
마흔넘은 딸 누가 유괴해 간데요?
그리고 아무리 동네가 변했기로서니 지가 살던집 못찾아 올까봐 그러세요?

하지만...딸찾느라 지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인기척을 듣고는 그만 전...이불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아이고 엄마! 나 어떻해...아버지 엄청 화나셨을텐데..

아버지가 들어오셔선 아이고 다리야..
난 이제 꼼짝도 못하겠다..저리고 마비가 오네..
그러시길래..놀래서 이불속에서 나왔습니다.

기들어가는 소리로....아부지..죄송해요.
하면서 아버지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드렸습니다.
괜찮다! 하시면서 약간 화를 푸시는것 같았습니다.
아휴!^^ 정말...왜그러세요?
저..아무도 납치안해요.
했더니..
너..지갑안에 돈 들었지?
에구구! 그렇구나...돈이 쪼곰있지..

서울 올라와서 이런 이야기를 시어머님께 들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래..나도 80 때는 씽씽^^ 날랐지..하시면서..
그때를 회상하시더군요.

이번에 한국 나와서 연로하신 시어머님 친정부모님을 뵙고 보니..나이가 든다는것..이 어떤건지..
참 많은 생각이 드네요.
늙음이 주는 무력감 같은것..말입니다.

이땅을 떠나는 날까지..
큰 고통없이 건강하게 사시다가 가시면 좋으련만..

한국왔다 갈때마다..어른들은 다시 널 보겠냐..이런 맘을 가지시는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그렁그렁한 눈빛을 보면..말입니다.



미국가서 뵙겠습니다.

모두들 평안하십시요!*^*
...........
동감님답글:
가족내의 나이드신 어른들은 우리들의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 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노년생활은 우리들로 하여금 대부분 우울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특히 오래된 가족앨범속에서 아버님의 청년시절 사진이나 어머님의 처녀시절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왜그리 저랑 똑같은 외모와 분위기를 가지고 계셨는지 신기하게 생각되기도 하면서, 그런분들이 저렇게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 세월이란게 우리 인간들을 얼마나 유한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지 울컥 서러움에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합니다.

허지만, 할아버님이나, 아버님이나, 제자신이나, 그리고 제 아들녀석으로 이어지는 연속고리란것을 반복되고 유전되어지는 특정 생명체의 지속적인 연장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우울하게만 생각되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새롭게 시작되고 해가지고, 다시 아침이 오듯이, 우리들의 유전자와 생명체 그리고 성격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나자신, 그리고 아들과 딸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속에서 매세대 새롭게 시작되고, 늙고, 다시 새생명으로 이어지는 아주 아름다운 자연순환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 입니다.

어떤 시인은 꽃을 바라볼때 그 꽃이 아름다운 것은 곧 지게될 그 꽃의 운명때문이라고 한말이 늘 새롭게 들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삶도 아름답게 보여질 충분한 자격이 있는것도 바로 이와같은 꽃같은 생명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매일매일을 힘차게 시작하고, 매 저녁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것과 똑같이, 청년시절을 힘차게 그리고 노년을 아름답고 차분하게 정리하고픈 생각이 듭니다.

연희님도 아마 아름다운 모습들을 준비하고 계시는게 아니신지요?

연희님!
미국으로 안전한 귀환 여행 하시기 바랍니다.

.................
류현석답글:
그 심정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제 할머니가 93세에 돌아가시면,
돌아가시기 전에 거의 10년 넘게
치매 상태로 계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저야 서울에서 떨어져 살았지만,
부모님께서 할머니를 모시면서 사셨는데,
뵈올 때마다 귀가 먹으셔가지고,
고함을 질러도 못 알아들으시고,
아직도 공비가 나온다고
산과 들을 헤매시는 모습을 볼 때,
좀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나이가 들면서 병이 들고, 노환이 들고,
귀가 먹고 그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노병사의 과정입니다.
저도 언젠가 그런식으로 나이 먹어 갈꺼구요.
이렇게 생각되니, 남의 일도 아니고,
조금은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되더라구요.
조금은 짜증이 나던 맘도 사라지고요.
있을 때 잘해 드려야죠.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제는
1년에 휴가갈 때마다 한국에 가서
부모님을 하루나 이틀 보더라도,
꼭 찾아 볼려고 노력 중입니다. ^.^
한번 잠시 보더라도,
그게 마음이 놓이니까요.
흰머리 늘어가시고, 점점 허리가 굽어 가시는
모습이 조금은 슬프게 하지만,
그래도 살아계심이 어디인가요.
못난 자식이 하루라도 더 뵈올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부모님이 아직까지 저를 더 기쁘게 해주시니,
불효라는 말이 가슴속에 메아리치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건강하시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3일안에 도착하기는 쉽지 않으니,
그나마 뵐 수 있을 때,
손이라도 한번 꽉 잡아 볼 수 밖에요...
.........
주연님답글
제가 대학 다닐때 일인거 같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조부모님(친정아버지는 이북분이라 단신월남하셔서 가족이 없었고,저희 외할머니는 막내이모를 유복자로 낳으셨다고 하니)인 외할머니가 치매로 집을 나가셔서 저하고 엄마하고 수유리에 찾으러 갔던 적이 있었지요.파출소로요(어쩌다가 아버지나 다른 어른이 안가고 제가 같이 갔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늦은 시간에야 연락이 되어서 할 수없이 그 근처 여관에서 통금해제를 기다려야했답니다. 아! 옛날이여!

그때 저희엄마 나이가 지금 저보다 좀 더 많았을까 뭐 그 정도였던 거 같네요.
전 팔딱팔딱대면서 이리저리를 쫓아다녔는데 엄마는 벌써 지쳐서 진이 다 빠지셨더라구요. 나이도 있지만, 심적으로 많이 피곤하셨겠지요.(난 아무래도 한치건너니까요)

여인 3대가 나란히 누웠지만,그 날 잠이 안오더군요. 그때 엄마가 하시던 말씀
" 이제 네가 나보다 일처리하는게 낫구나"
난 그게 그렇게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엄마가 한풀꺾여 늙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이요.

난 아직 그 나이에 쌩쌩한데............

- 다른 얘기지만 그 날 여관 옆방의 이상한 소리는 아마 제가 최초로 경험한 히안한 일로 기억됩니다, 엄마도 얼마나 어색했었을까요?-


그리고 어쩌다가 들르는 친정나들이에 부엌이 지저분한걸 보면 제가 한소리하지요. 어마 이게 뭐야! 하구요. 엄마는 눈이 잘 안보여서...
하며 변명같이 얘기를 하시지요.

그리곤 이어서 전 고무장갑끼고 앞치마 두르고,주방이랑 화장실 청소를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남편눈총(쟤가 왜 저러나? 시댁에선 생전 안 하면서 하는듯한)을 받아가며 씩씩대고 한답니다.

늙는다는 게 뭔지......

기도해야한답니다.
주변사람 폐안끼치고,고옵게 늙어 갈수 있도록...


연희씨 내몫까지 이쁜 딸 노릇하고 오셔잉!
......................
오연희답글:
동감님 현석님 주연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저의 시어머님이 이번에..
저에게 여러번 하신말씀은..
얘야! 넌 늙지 마라!
늙으니...아주 못쓰겠어..

참 우습죠?
사실 아흔 가까우신 분이 그정도면
아주 정정하신 편인데도..
당신은 늙지 않을줄 알았다며..
지금도 아프지 않아야 되고
귀도 잘 들려야 된다는 듯이..
말씀을 하시거던요.

한국가서 머리컷 할까하고 미장원에
들렸는데(결국 하지 않았지만...)
파마를 하고 계시던 어느 할머니가
손자가 태어나서 좋긴한데..
자신이 이젠 늙은이가 된것 같아서
슬프다고..하시더라구요.

우리의 늙음도 그런분들처럼 그렇게
오고 있겠지요.

동감님이나 현석님처럼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자연순환구조를 생각하면..
받아들여 지는 면도 있지만..
역시 자손은 자손이지 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잠깐만에
가버리는 것 같지요.

저도..10대땐 서른넘어까진 살지 않겠다고
시건방진 생각을 한적이 있답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젊음에다가 두었거던요.
그런데 정말 나이가 들어도 그나이에 맞게
삶의 기쁨이 있다는것을 깨닫고 나선
나이듬이 받아들여 지더라구요.

하지만...팔십 구십..이런 나이는 정말..
상상이 안되는거 있죠!
동감님..현석님 주연님..
우리 그때까지 살아서..
인터넷 동시 채팅 할래요? 와하하하!
상상만해도 상상이 안되네...오호호..
눈이나 잘 보일런지 몰러..
귀는...

동감이는 아직도 그이름 고수하고 있디야?
현석이는 즈윽슥 샥시랑 사이에 아들손자가
24명 이라데..총각같은 유부남이라더니...
많이도 낳구먼..
주연이는 영화배우의 주연이처럼 참한
할무이두먼..이히히...
연희는...젊었을적에도 심하두만 요즘은
지 방도 못찾아 갈 정도로 치매가 심하디야...
그려도..수다는 여전하더라구...으흐흐

오늘 늙음에 대한 좋은 상상만 하기로 해요! 우리..

모두들 평안한 밤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