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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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중앙/죽지말까요?

2007.09.03 11:58

오연희 조회 수:452 추천:56

저의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카톨릭묘지인 Holy cross 공원이 있습니다.
어제 오빠네 가정에서 차례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두 가정이 함께 오빠가 묻혀있는 공원묘지로 갔습니다.
그 넓은 공원 중 한국인들을 위한 묘지가(물론 외국인도 섞여 있었지만…)한구탱이에 자리잡고 있었고 한참 내려오다 보면 중국인들의 묘지도 보였습니다.
특징은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처럼 비석을 그냥 땅에 눕혀놓았는데 중국인들의 묘지는 예전에 보았던 한국의 묘지처럼 비석이 위로 세워져 있다는 겁니다.

어제는 역시 한국의 추석이어서인지 한인묘지가 몰려있는 곳엔 차를 댈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한인 성묘객들로 붐볐습니다.

김대건신부 동상이 있는 옆자리엔 오늘 장례식을 하는지 검은 옷을 입은 한인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보였고 또 한쪽엔 미국인들의 장례행렬이 몇 군데 보였습니다.

오빠자리 근처에서 갈 때마다 만나는 어느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딸의 모습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물론 그 가정은 매 토요일마다 오지만 제가 너무 간만에 가다 보니 오랜만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 아버지 되는 분과 여러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내가 떠난 지 2년이 지났는데…잊을 수가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젠 그만 잊으라고 하지만…그 말씀을 하시면서 60을 바라보시는 그분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음성이 떨렸습니다.

아들은 엘에이에서 변호사고 딸은 학교 선생님인데 아직 미혼이라며…..아내가 없는 자리를 애들이 매꾸곤 있지만…너무 힘들다며…여러모로….아내가 보고 싶다며..어린아이처럼 울먹였습니다.

그 아저씨의 돌아가신 부인 옆자리엔 24살 된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멕시칸 어머니의 꽃이 몇 년 동안 한번도 빈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 때마다 어찌나 꽃이 화려하게 많이 꽂혀있던지 저의 눈길을 끌길래 여쭈어 봤습니다.

보통은 한 묘에 하나의 꽃병을 준비하는데 이 어머니는 세 개의 꽃병을 준비하곤 단 한번도 꽃이 없는 날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부나 형제는 죽은 자에 대해서 자기들의 형편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고 소홀해 질 수도 있지만 자식을 떠나 보낸 엄마의 맘은 절대 변하지 않는구나..다시 한번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새겨보는 엄숙함을 가지게 됩니다.

요즘은 부부 중 한쪽이 먼저가면 묻힌 자리 위에 나중에 가는 분의 관을 올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살 때도 지긋지긋 했는데 죽어서 까지 가슴 답답하게 한 묘에 묻히기 싫다며 굳이 다른 묘를 주장하는 분도 계시다고 했습니다.
묘 자리는 거의 $3000~$4000 정도이며 월부로 사놓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끔은 자신의 묘를 이미 사놓으신 분이 사정이 딱한 …예를 들면 장사 지낼 또는 묘를 살 형편이 안 되는 망자를 위해서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하나 사놓을까 하다가..
가만…현세에 살집도 아직 사지 못했는데 죽어서 갈 집부터 사다니.. 낄낄대면서 웃었더니..
아..이세상은 나그네 인생이니까 그냥..렌트살고 영원히 살집부터 장만하는 것이 좋지않어?
이런저런 우스개 소리 주고받으면서 삶 죽음 그리고 집을 생각해 봤습니다.

우린 오늘도 살아있기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획합니다.
죽을거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 그리 흔치 않습니다.
땅속에 들어갈 때 그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근데…준비제대로 하고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떠나가나 봅니다.
...................
류현석답글
문득 연희님의 글을 읽다 보니,
얼마전에 한국에 갔다가 본 프로그램 내용이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한국에서 좋아 하는 프로그램은
뉴스도, 드라마도 좋지만,
아침 시간에 하는 삶의 현장을 담아
상담 형식으로 하는 것과
인간 드라마 같이 특정한 사람의 모습을
같이 다니며 찍은 것들입니다.
뭐 제리 스프링거 쇼 같은 것이 낮시간대를
차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고 봅니다. ^.^
제리 스프링거가 한때 의원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
사실일겁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본 것 중의 하나가,
어떤 분이 어머님 돌아 가시면서,
3년간 시묘살이 하는 것을
찍은 겁니다.
묘자리 옆에 텐트 치고, 낮에 계속 이야기해 드리면서,
혼자서 밥해먹고, 이것 저것 해 먹으면서,
낮에 1.5리터 플라스틱병에다가 물 받아서
햇볕에 데웠다가,
저녁때 그 몇병의 물로 대충 나무사이에서 가리고,
샤워를 하면서 지내는 모습을
그 분의 말씀과 더불어
찍은 것인데,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무엇보다도 그걸 감내하는 부인과 따님이
더 위대해 보였습니다. ^>^

좀 전에도 약 한시간 넘게 졸지에
카운셀링을 하다가 전화를 끊었습니다만,
가정의 의미가 뭔지 새삼스럽게
소중함을 제대로 알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바로 제가 눈 감을 때
후회없이 미소를 머금으며
눈감을 수 있다면 입니다... ^.^

너무 꿈이 크죠? ^.^
묘자리야 어떻습니까?
한줌의 재로 사라진들,
후회없이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게 아닐까요?
나중에 주님께서 준비해 놓은 길이
있다면, 그때 열심히 가면 그만이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순간에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제가 할일이 아닌가 합니다. ^>^
..............
오연희답글
저..정말 첨들어보는 단어이네요.

제가 이래요..
도무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가끔 띵!^^ 할때가 있다니께요.ㅎㅎ

돌아가시고 정성을 기울이는것 보다는 살아계실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 뵙는것이 좋을듯 시퍼요.
아마 위의 시묘살이를 하신분은 살아계실때는 더 지극했을테지만...

눈감을때 후회없는 미소라..
그래요.
그런삶을 산다면 그야말로 베스트의 인생이 되겠지요.
전..이런말을 좋아해요!
이땅에서 천국을(그러니까 마음의 천국을 말하는것이겠지요)맛보지 못한자는 결코 천국에 갈수 없다!
고..

이땅에선 고달프기 짝이없는 인생을 살면서도 저생만 가면 모든것이 해결된다는 식은 생각은 저..
별로 거던요.

생존해 있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지요.
미래도 결국은 다가올 현재니까..

우리 너무 심각한 이야기는 그만 해요!호호..

하늘한번보고..
씩!^^ 웃어봅시다요!^^
................................
장마리답글

죽어줘야 합니다.
(연희님이 죽지말까요?해서 하는 답입니다)
갈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아
헌것이 새것되고 다시 새것이 헌것되어
그렇게 세상이 잘도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전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짓이
남의 것 뺏어 먹는것과
가야할때 몬간다고 발악하는거라 봅니다.

전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좋습니다.
가식이 없고 시비가 없고 욕심이 없습니다.
적어도 삶과 죽음의 순리도
잘 아는 사람 같아서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 노력중입니다.

아주 어릴적에 우리 아버지의 엄마가 돌아가실적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초딩 2학년 정도?)
며느리인 우리엄말 그리도 구박하더니
돌아가실때 조차도 몬죽겠다고 악을 쓰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엄마에겐 못됐게 하셨어도
손주들인 우리는 늘 무릎에 앉히셔서 옛날얘기를 (지금 생각해보면 홀라당 거짓말이지만)해주셨기에 그래도 조금 용서하고 가끔 생각도 납니다만..

돌아가실적 당시의 그 추한 모습이
제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흔히 하는 말로 귀신이란게 있다면
제겐 그 할머니의 임종직전의 얼굴입니다.

누군가가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을때마다
그 사람이 나와 관계가 있던 없던
그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을까?부터
의문스러워지면서 그당시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이 됩니다.

그냥 연희님의 묘지방문 글을 읽으니
옛생각도 나고 연희님의 방문묘사가 끈끈하니
제 가슴을 적십니다.그래서 나도 한수 읊었슴다.

캐나다의 추석요?
내가 우째 아능교?
여긴 한국사람도 가물에 콩나는 곳이라 더 그렇고
토론토쯤은 되어야 난리났겄지요뭐.

요즘은 한국에서 싫고 귀찮았던 모든것들이
그립습니다.남편이랑 오늘 얘기했는데 내년쯤엔
제사도 억지로라도 하나 받아올까 싶습니다.

이유같은것 붙이지말고 그냥
일년에 한번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옛어른들을
생각하며 음식도 나누어먹고 그리워서
눈물도 흘려보고 그러는 시간을 갖는건
참으로 좋은일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

오연희답글
전 죽음앞에서는 모든 일들이 용서가 되는줄 알았어요.
근데 절대 아니더라구요.
마리님이 엄마와 할머니 말씀을 하시니..
오빠가 가실때의 제 친정엄마와 며느리인 제 올케의 모습이 떠올라서요.

올케가 시집올때 엄마의 반대가 극심했지요.
몇년을 반대하다가 결국 임신 8개월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오는데야 ...결국 첫아이 낳기 두달전에 배가 남산만 해가지고 결혼식이라는걸 올려주었지요.
우리오빠요..시골에 몇안되는 서울 유학생이었지요.
집안형편 뻔히 알면서도 지방대학안가고 결국 서울로...
그렇게 기른 장남 외아들 오빠니 엄마는 목에 힘주고 며느리 맞을줄 알았지요.

근데..서로 그때의 앙금이 평생을 가더라는겁니다.
오빠의 죽음앞에서도 서로를 원망하며..
제가 그때 분위기 맞추느라 혼났다는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오빠가 가시기 얼마전에 전에게 털어논 이야기가 생각나서...
참고 사느라고 힘들었다..연희야..
전..오빠를 기쁘게 보내드릴려고 두사람사이들 왔다갔다 화해시키느라..제딴에 애들 쓰느라고 썼지만..

결국 오빠가 가시고도 그 틈이 좁혀지지 않고 되려 벌어지더군요.

전...많은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자신도 추하지 않게 이땅을 떠나야겠지만..
떠나는 분은 어떠한 이유로던 편안하게 보내드려야겠다..는 것을..

엄마와 올케 두분을 지켜보면서 사람은 너무
자기위주라는 생각 많이 해 보았습니다.

요즘도..저 애쓰고 있어요.
두분사이에서...
내가 할수 있는데까지..
각각은 참 좋은 사람들인데..
인연이라는것이...
.........................
장마리답글
조 아래 현석님과 연희님이
성고문 우짜고 저짜고 하셨네예~~

저의 푼수 정도를 갖고 고런 험악한 야그를
해싸면 앞으로 저 참말로 쒝~~해집니데이.

울 남편은 sexual harassment에 대해
누가 거품물고 야그하면 이랍니다.

" 나는 와 아무도 sexual harassment을 당하게
안해주노 말이다.나도 당하고시퍼..남자들만 빼고..
울 마누라도 언제든 환영이여.."
.............
정아님 답글
연희님, 이번 추석은 정말 힘드셨겠네요.
오빠 가족분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드려야할지..
더군다나 낯선 미국땅에 남겨진 가족들의
어려움과 슬픔을 생각하면 제 가슴이 다 막막해
지는군요.

부모, 형제도 없는 이곳 미국에서 아이 셋을 기르다 보니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고
엄마가 없으면 가정도 사업도 다 무너져 내릴
지경이니 제가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아파서 들어 눕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가장 염려하였답니다.
적어도 막내가 운전 할때까지만이라도 무사히
지낼 수 있기를 빌었죠.

이제 곧 막내가 운전 면허를 딴답니다.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부담에서는 벗어난 기분입니다.
미국에서 16 미만에 부모를 잃는 다는 것은
우리같은 이민가족에게는 생존의 위협선이라고
나름대로 저는 금을 그어 놓았답니다.

이제는 그 답답하고 어두운 터널을 막 벗어났는데
제가 죽음에서 자유로와 졌을까요?

50을 바라보는 제 친구들,
특히 그동안 헌신적으로 가족을 보살피고
몸에 남아있는 기름 한방울 까지도
가족을 위해 다 바친 친구들...

그 친구 아줌마들의 분위기가 요즘 심상치 않습니다.
곧 대 반란이 일어 날것 같아요.
요즘 저의 베이스켐프로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2~3년 내로 지구를 떠나는 아줌마 부대가
속출 할것같은 조짐이 보입니다.

50대의 반란이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제가 횡설 수설하는 것 같죠?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출판윤리법(?)도 준수하여야하고
석달 열흘을 얘기해도 끝이 나지않을 이야기들이
가슴에 꽉 차서 제가 무슨 소리하는 지도
모르겠읍니다.

제 주위에 특이한 아줌니들이 많이 있걸랑요~~~
(미 전국에 퍼져있음다)

에고,
오늘은 연희님의 우울한 마음이 나에게 전해져
저도 뭔 소리를 했는 지 모르겠읍니다.
............................
정아님답글
요즘 날씨도 착찹하고 분위기도 우울하야 어저께
멀리 North Carolrina에 사는 친구와 수다를
떨었읍니다.

이 친구, 한국에서 잘나가는 집안의 순수하고
어리뻥뻥한(가족들 말) 딸이라서
어느날 분위기 있는 얼굴에 어려운 집의 수재님과 결혼을 하였답니다.(친구들은 느끼남이라고..)

자기가진 돈과 친정을 협박하야 뜯어낸 돈으로
미국에 와서 남편의 석사 박사학위까지 따고
현재 남편은 S대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읍니다.
유학시절 아이들을(3명) 모두 모유로 길러내고
기저기값도 아끼느라 전부 헝겁기저기로 키우면서
임신말기까지 베비시터까지 하면서 억척을
부렸읍니다.

아이들은 시민권자라 몇년 전에 미국으로와서
현재 부부이산 가족이 되었읍니다.
한국에서 아파트하나 장만하려고 떨었던 억척은
친구들 사이의 화제거리였죠.

교수월급에 두집살림하려니 이곳에서도 part time일을 해가며 살림을 꾸려 나간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아이들은 엄마의 억척을
부담스러하며, 남편은 차도없이 컴퓨터를 끼고
다니며 학교에 나가느라 힘들다고만하고
아내의 어려움은 헤아려 주지못한다네요.

열심히 살은 뒤 끝이 경제적인 안정감도 누리지 못하고 남편의 명예는 한국에 버려두고,
아이들의 불평만 듣고있는 자신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또 하나의 친구,
이 친구는 현재 남가주에 살고있죠.
한국에서 집에 대리석을 깔고 살면서도
살림을 직접 다 챙기고 친구들을 위하여 일년
열두달 대문을 개방해 놓고 살던 친굽니다.
몸베바지 비스무리한것을 입고 살림만 살다보니
배달온 사람이 파출부를 주인아줌마로 오인하더랍니다.

남편의 사업의 부침이 심하여 그 혼란스런 와중에도 아이들을 외풍에 흔들리지 않게 보호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아이들과 함께 7년 전 미국으로 와서 혼자서
아이 셋(이 친구도 셋을 ..) 뒷바라지하고
현재 막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읍니다.

그동안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서인지
현재 갑상선을 앓고있읍니다.
남편은 사업상 거의 한국에 머무르며 활동하기 때문에 이곳에 정착하고 아이들 뒤 치다거리는
거의 모르는 편이죠.

그런데 황당한 것은 남편이 저에게 왜 자기아내가 요즘 짜증을 잘 내고 피곤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래서 제가 반란을 모의했읍니다.

North Carolina 짠순이가 L.A로 쉬러 오겠다고하길래 이번에는 우리 세 아줌마들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고 했죠.
SanDiego의 멋진 바닷가 옆에 방을 잡고서
바다를 바라보며 wine도 마시고, 주변의
gallery도 둘러보고, 이쁜 가게들도 둘러보고 수다도 떨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후반부 인생을
설계하기로 했읍니다.

놀라운것은 친구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 여행도 했고 친구들과 틈틈이 만났지만 지금 이 나이에 하는 여행은 의미가 다른 것 같읍니다.

열심히 살아온 나의 친구들, 모두 자신들의 삶에 대하여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삶이었기에
결과에 대해서는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더 이상 뒤를 돌아다 보지 않기로 했읍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 말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아줌마들의 반란 제 1 탄을 꿈 꿉니다.
.............
오연희답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와~~~~~~
정말 대단한 용기를 내셨습니다.
사실 말로는 한번 모여서 실컷 속풀이 좀 하자 어쩌고 하지만..고거이 말처럼 잘안되는거이가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요?

아무리 가족이라하더라도 자신이 불편하면 절대 참지 않는거 마자요.
이제 자신의 길들을 찾아나서야해요.
근데 문제는 건강을 반드시 체크하면서 살아야되요.
이제 조금 내시간을 갖기 시작하면 닥쳐오는 불행한 일들이 꽤많거던요.

근데 가실곳이 샌디에고라구요?
저도 이번주 토요일 샌디에고 가는데...ㅎㅎ
남편이 그곳에서 골프약속이 있는데 하도 같이가자고 쫄라서..
제가 샌디에고서 4년을 살았었잖아요.
그래서 그곳에 친구들이 좀 있어요.
이번에가서 또 수다보따리좀 풀어놓을까하구요.

샌디에고 바닷가 정말 멋지죠.
바닷가가 와짜지껄하겠는데요.
막강한 여사들께서 그동안 못다한 회포를 풀어놓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아무도 못말려...잉! 될거니께로...ㅋㅋ

아줌마의 반란에 낑기고 싶지만 저야 함께한 추억이 없으니 되려 분위기 썰렁하게 할지도 모르니깐 참아야겠네요.

정말...부르브요!
반란후기 보고해 주셔야해요!
혹시 알아여..
조오기 마리님이 보따리 싸들고 엘에이로 내려올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저도 떠날준비나 할랍니다요!
나니님...우리 어데가까??
...........
정아님답글
으히히히....
남자분 들의 썰렁한 표정이 보이는 군요.
그러길래 있을 때 잘하시욧!!!

요즘 신세대들은 정말 잘 하더군요.
가끔 보기 애처러울 정도로요.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역시 세대차이 인가요?

한국에 요즘 여성과 사회문제가 큰 이슈거리이던데
언젠가 한번 우리가 나누어 봐야할 문제인 것
같읍니다.
특히 이민 사회의 여성과 사회, 가정과 육아에
관해 좀더 심도 있게 토론해 보는 것이 어떨지요.
나니님, 이 문제를 깊이 다루면 여성학, 혹은
사회학 박사학위도 딸수 있을 주제아닙니까?
나니님의 박사학위를 위하여 뒤에서 도와줄 인원은
대충 구성된 것같은데...*^^*...?...

결국은 의식문제인데 우리의 딸들이 대접받고
살기를 원하며는 우리 각자의 아들들을
잘 키울 책임이 우리 엄마들에게 있는것 같읍니다.

연희님,
San Diego 가신다고요?
좋은 곳 아시며는 저에게 멜 주세요.

우리 언제 한번 뭉쳐서 더 재미있는
behind story를 나누어야 하는데...
기다리십쇼!
우리 한번 찐~~한 시간 가져 봅시다.

나니님도 가능 한 것같고
마리!
자네는 눈감고 귀막고 10년은 넘게 지내야 할것
같으이...
정~ 답답하고 억울하면 자판기를 열심히
두드릴 수 밖에..
세상에 거저 먹는 것은 없으이...

..................
나니님 답글
가긴 어델 갑네까요? ㅠ.ㅠ

울 아그덜 택순이 노릇은 뉘가
하라꼬?

반란도 암나 암때나 하는게
아이지요~...empty nesters 틈에
낑길라면 저도 한 육년 꾸욱~ 참고
버텨야 합네다요. ^^

저는 고저 아그덜 집에 놔두고
냄편과 손잡고 스타벅스 나 가고
맥주 한잔 이락두 마시게 될 수
있는것에 감사하고 싶습니다요.
아적은...별 수 있남요...

다들 저와 같은 때가 있으셨을
선배님들의 반란에 축하를 드리면서
나니는 고저 뒤에서 욜씨미
박수를 쳐 드리겟심다. *^^*

아주아주 좋~은 시간 가지시라요,
선배님덜~~! *^^*

..........
오연희답글
정아님..

정말 할말 많죠?
애들 대충 엄마의 잔손길이 벗어날때쯤 되면 엄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추위를 잘타는 편이라 웬만한 날씨에도 벌벌 떨고 있으면 아니..왜그러냐고? 이만한 날씨에..애들이 그러지요..
그래 이녀석들아..껍데기만 남아서 그렇다! 월쩔래?
전..결혼도 일찍한 편이고 결혼하자마자 애들도 이년터울로 남매바로 낳고 끝냈더니 일찍 날개를 달개 되었지요.
맞아요.
정아님 말씀처럼 혹 내가 잘못되면 잘못되는 나자신보다 남겨진 가족들에 대해서 더 염려하면서 살아왔구요.
애들 운전 씽씽거리고 다니고 나니 그야말로 많은 엄마들에게 다가오는 무서운 이야기들..
정아님 횡설수설 아닌거 저..알아요!.너무 잘..
이젠...이땅을 떠날 일이 생긴것이..
예전에 들었던..
나 감기 걸렸어! 정도의 흔히 들을수 있는 이야기 인것을..
저...가슴이 괜히 젖어드네요...아프게..
우리 아줌마들은 같은 아픔을 안고살기에...
서로의 가슴을 열고 대화를 해나가야 되는거예요.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거던요.
내친구의 이야기고 누이의 이야기고 엄마의 이야기고...
아니..우리 모두의 이야기예요.
저도 이런 슬픈이야기 하며 살게 될줄 오빠가 이땅을 떠나시기 전까지도 몰랐거던요.
겨우 7개월전이예요.
저도 가슴이 꽉차는 그 기분 조금은 알것 같아요.!
심상찮은 나이죠..

...........................................................................................................
청계천궁을다녀오다
"대통령이 만들어다잫아!" 누군가의 한마디에 까르르 웃음소리 터진다. 6시가 가까워오자 청계천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싼 인파로 전형적인 한국겨울의 매섭게찬 저녁공기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너무 들떠있는듯해 지나가는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점등식이 있단다. 우리 가족도 카메라를 꺼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6시 1분전 분위기를 고조시키느라 카운터다운을 세던 뒤쪽의 한 남자가 갑자기 전화기를 들더니 "아...여보시오! 나 거시긴데 오늘 점등은 하지 마셔잉!" 너스레를 떨고 일행인듯한 사람들이 와하하 배꼽 잡고 웃는소리 흥겹다. "시장 비서실에 전화했응께 오늘 점등식은 없을거여...그만들 집으로 갑시다들..." 이어지는 너스레와 동시에 청겨천은 별천지로 바뀌었다. 꿈속에서나 볼것같은 환상적인 왕궁이다. "와~"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에 우리가족역시 환호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