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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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중앙/인생을 바꾼 말한마디 펌

2007.08.28 09:21

오연희 조회 수:274 추천:60

3년째 제 인생을 말아먹고 있는 프로그램 리얼코리아의 간판은 다름아닌 '그곳에 가면'이라는 코너입니다. 바로 서울, 경기 인근의 식당 소개 코너지요. 처음 이 코너를 시작할 때 PD들과 작가들의 의욕과 의도는 사뭇 남달랐습니다. 즉 "리포터 데리고 식당 찾아가서 떡 벌어진 한 상 차려 놓고 맛있다 맛있다 연발하는 그런 프로그램하지는 말자... 맛 이외에 그 속에 스며 있는 사람의 냄새와 사연을 찾아내자...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음식을 매개로 한 휴먼 에세이다!!!"는 것이 당시의 각오였지요.

그러다보니 "뭐 그런 구질구질한 식당이 다 나오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새단장한 깔끔보다는 오래된 허름을, 화려한 진수성찬 보다는 칼국수 한 그릇 쪽을, 비싼 메뉴보다는 지갑에서 쉽게 풀릴 수 있을만한 액수 편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이 많이 완화되었긴 하지만 지금도 "식당이 너무 커서... 또 너무 화려해서" 아이템 후보에서 잘리는 수가 많으니까요.

그 동안 허다한 식당들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 내가 왜 여길 찍고 있을까 싶은 폭탄도 있었고 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타이틀 붙여 내고 싶은 곳도 없지는 않았어요. 어쨌건 하루에 최소 한 끼는 밖에서 먹어야 되는 판에, 식당이란 곳은 참으로 다양한 군상들이 몰려드는 곳이고, 그곳을 차고 앉아 있노라면 우리 주변의 숨겨진 이면들을 곧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뭐 이를테면 대한민국에 불륜이 얼마나 많은가... 저는 이걸 식당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촌 여관 골목 근처에서 점심 시간에 촬영을 하는데 그때 밥먹던 다섯 쌍의 중년 커플들 카메라가 다가가니까 2미터는 족히 튀어오르며 기절초풍을 합니다. 처음에는 제 카메라가 권총같아 보였나? 싶을만큼 영문을 몰랐습니다만... 주인이 제 등을 두들기면서 그러더군요.
"에이 다 아시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뜨내기로, 또는 단골로, 때로는 정말 가족처럼 드나드는 공간인 식당에 비록 하루이기는 합니다만 꽤 객관적인 관찰자로 서 있다 보면 재미있는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삼각지 근처의 국수집 하나를 촬영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 집 주인 할머니는 참 푸짐한 분이셨습니다. 별 거 아닌 국수 한 그릇이지만 손님이 먹는 거 봐서 양이 조금 적어 보인다 싶으면 말 하지도 않았는데 그릇 뺏아가서 풍성하게 다시 담아 주는 그런 스타일이셨지요. 원래 허름한 가게이긴 하지만 카운터도 따로 있지 않고 돈통이 물컵 놓는 선반에 함께 놓여 있어서 손님들이 알아서 돈을 그 안에 놓고, 더한 경우는 잔돈까지 알아서 세어 가는 진풍경이 가끔 벌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멸치국물로 진하게 우러낸 국수와 속이 알차 뵈는 김밥 정도가 메뉴의 전부이지만 한 끼를 거뜬히 채우기엔 부족함이 없고 거기에 진짜 우리 할머니같은 주인 할머니의 마음씨가 더해지면 손님들은 그야말로 배를 두드리면서 가게 문을 나서게 되지요.

제가 거기 손님들로부터 딴 인터뷰 가운데 주인 할머니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이것이었습니다.

"음식 맛하고 할머니 마음씨하고 똑같아요. 최고죠."

인터뷰 하기에 가장 힘들다는 공무원 아저씨, 그것도 국방부 공무원 아저씨였습니다. 보통 공무원들은 무슨 이윤지 몰라도 카메라 보면 아예 외면해 버리기 일쑤인데 그 아저씨 일행은 왁자지껄 신이 나서 할머니 예찬을 늘어놓더군요. 그곳이 그만큼 편안한 곳이어서일까요. 참 인상이 깊은 국수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식당이 제 뇌리에서 빼낼 수 없는 추억으로 박혀들게 된 것은 오히려 방송 다음날에 생긴 일 때문이었습니다.

무심코 제 앞의 전화가 울려서 받았습니다. 한 40대 정도의 남자 목소리...... 삼각지 국수집....이라고 얼핏 듣고는 기계적으로 전화번호를 읊어 주었는데 이 아저씨가 간절한 목소리로 거기 갔다온 PD를 찾는 겁니다. 그래서 저라고 했더니 이 아저씨 갑자기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연방 외쳐 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라리? 할머니 아들인가? 아니지.. 어제 다 만났는데 이런 사람은 없었어요..... 조심스레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인생이 바뀌다니? 국수집 때문에? 조금 황당한 생각이 들어서 심드렁한 말투로 물었습니다. "인생이 바뀌다니요?"

그러자 그 아저씨 아직 감동의 물결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그의 기나긴 사연을 풀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5년쯤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털어먹고 설상가상으로 아내까지 그의 곁을 떠나 버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알콜중독까지 겹쳐 가족까지도 내다보지 않는 쓰레기 인생(그 아저씨 표현)이 되어 용산역 앞을 배회하는 서글픈 인생이었답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프더랍니다. 평소엔 술 먹으면 밥 생각은 아니 났는데 그날따라 '배가 목을 당기는 것처럼' 먹을 것을 찾더랍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주머니엔 땡전 한 푼 남아 있지 않았다지요. 용산역에서 길따라 난 식당에 들어가서 일단 밥을 먹고 통사정해 보려고 했지만 그는 가게 문을 들어서지도 못했습니다. 대부분 문전박대에, 어디는 소금을 뿌리고 어떤 집은 개를 풀겠다고 위협하고 진짜 살벌한 집은 우락부락한 주인이 집어던져 버렸답니다.

처음엔 정말 서글픈 마음으로 밥 한 술 얻어먹으러 나섰지만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랍니다. 왜 아라비안나이트에 보면 천 년 동안 항아리에 갇혀 있던 마인이 500년 동안은 구해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하지만, 그 뒤엔 오기가 나서 다 죽여버린다고 했다지 않습니까. 비슷한 오기로 그는 용산역 인근 식당을 일일이 다 들어가보고 몽땅 그렇게 나오면 밤에 휘발유 뿌리고 불질러 버릴 생각까지 났대요.

그러다 삼각지 화랑가 작은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까지 간 겁니다. 쭈볏쭈볏 들어서자 할머니가 자기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면서 어서 앉아요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국수를 말아 주는데 태어난 후 그렇게 입에 단 음식은 처음이었다지요. 허겁지겁 국수를 배로 퍼 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뺏더랍니다. 으잉? 하고 할머니를 바라보니 할머니가 삶은 국수를 더 남고 국물을 한가득 다시 따라 주더라네요.
"먹는 품 보니까 한 그릇으론 안되겠어. 거 참 맛있게 먹네" 하면서 말입니다.

거의 두 그릇 양은 됨직한 국수를 다 털어넣은 뒤에야 할머니께 어떻게 말을 할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원래는 나 돈 없슈 배 째슈 할 생각이었지만 할머니의 풍성한 마음과 웃음을 본 다음이라 그런 무도한 짓을 할 자신은 없더랍니다. 그래서 이 아저씨는 그냥 말없이 도망가기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다른 국수를 삶는 틈을 타서, 그 딸이 잠깐 뭐 사러 나간 사이를 이용해 그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뒤꼭지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국수 먹고 힘난 다리를 기운차게 놀리며 도망을 쳤지요.

한참을 도망가서 용산 소방서 앞에 이르렀을 때에야 그는 겨우 멈추었습니다. 헉헉대면서 숨을 돌리는 차에 그의 귓전에 걸려 있던 할머니의 외침이 그제야 머릿 속에 들어왔답니다. 테이블을 걷어차면서 문을 박차고 도망가던 그의 뒷전에 날린 할머니의 외침은 이것이었다는군요.

"그냥 가!! 뛰지 말아!! 다쳐요."

"어디 가? 거기 서! 돈 내놔!"쯤으로 흘러 들었었는데 그 엉겁결을 지나고 보니 할머니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떠올랐다는 겁니다. 즉... 할머니는 자신이 돈을 내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도 친절하게 맞아 주었고, 국수 한 그릇 더 퍼 주면서 웃어 주었고 배은망덕하게도 말 한 마디 없이 도망갈 때에도 뛰지 말라고 외쳐 준 것이죠.

그날 그 아저씨는 용산역 앞으로 돌아가서 몇 시간을 펑펑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자신을 속이기만 해 왔던 세상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버렸던 아내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음장 속에 숨막혀 가던 자신에게 그 할머니의 말 한 마디는 그야말로 숨구멍이었고, 따스한 불씨 한 조각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다음 날 냉대를 무릅쓰고 본가로 돌아갔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파라과이로 홀홀단신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을 힘을 다해 살아냈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파라과이에서 꽤 큰 장사를 벌이는 성공시대를 이룩해 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여기 저기 인사할 데 인사다니는 도중 TV에서 그 할머니를 봤다는 것이지요.

연신 '감사하다' (왜 나한테 감사한지는 도통 모르겠지만)고 되뇌는 아저씨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국수집에 인사 오시라.. 내가 촬영을 해서 방송을 하겠다. 그 할머니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밝혀 줄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오. 아마 할머니는 기억을 못하실 겁니다. 그 분은 저 말고도 그런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또 제가 TV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그 분께 감사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나중에 더 나이 들어서 가고 싶어요. 당신이 제 인생을 이렇게 바꾸었다고 알려 드리게......"

저도 뭐 더 이상 권하지 않았습니다. 욕심이야 그 감동적인 장면을 꼭 내 손으로 남기고 싶지만 , 또 진짜 근성있는 PD라면 어떻게든 꼬셔서 그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알지만, 사실 전 근성 없거든요 쩝...

언젠가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보면서 미리엘 주교의 선한 거짓말 한 마디가 19년 옥살이로 한맺힌 장발장을 개과천선시킨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가벼운 논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아저씨와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사람의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내뱉는 수백 수천 마디의 말들의 의미를 까먹고 살아갑니다. 아마 국수집 할머니조차 도망가던 아저씨의 뒤에 대고 뭐라 외치던 날의 기억을 잃어버렸을지 모르고, 그날 그 아저씨에게 험악한 욕지거리와 함께 아침부터 재수없이...를 던졌던 식당 주인장들의 머릿 속에도 그 아저씨는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지요.

산다는 것...... 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임을, 그리고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나, 변두리 식당 주인, 그리고 그냥 대한민국의 장삼이사들도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게 해 주는 그 날의 통화였습니다.


p.s. 아직은 낯선 이 공간에서,... 저에게 겨눠진 것은 전혀 아닐지라도 오고가는 말에 달린 날카로운 침들에 파들파들 떨 때가 있습니다. 그 침들이 조금이라도 무뎌지기를 바랍니다. 논리의 정연함이나 주장의 설득력까지도 때론 그 침들에 다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