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우리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까

posted Feb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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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으로 나이, 신분, 직종을 숨기고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내는 음악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즐겨 본다. 몇 해 전 LA 공연 때 보았던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 임형주의 청명한 목소리가 듣고 싶어 클릭했다가 발목이 잡혔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임형주. 가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얼마나 승자다워 보이던지.

얼마 전에는 복면가왕 5연승 신기록을 세운 '캣츠걸'이 가면을 벗었다. 명성황후 역으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차지연, 폭발하는 에너지로 광기마저 느껴지던 그녀의 뜨거운 퍼포먼스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노래 실력을 겨뤄 패하면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다. 관중석에서는 의외의 인물이라는 듯 놀라움과 환호의 함성이 터져 나오고 출연자의 출연의 변이 이어진다. 출연의 이유가 다채롭고 흥미로웠지만 대중에게 잊혀지고 싶지 않아 출연했다는 전성기가 지난 한 스타의 고백에 코가 싸해진다. 자신의 실력을 새롭게 평가받고 싶어 용기를 냈지만 쟁쟁한 실력자들 앞에 꼬리를 내리고 '나 살아 있어요'로 만족하며 무대 뒤로 사라진다.

노래 대결도 볼 만하지만 쓰고 나오는 기괴한 가면들이 정말 아이디어 만발이다. 내 기억 속의 가면은 만화영화 배트맨의 박쥐 가면이다. 의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 박쥐 날개 같은 망토를 휘날리며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창문을 타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멋진 청년으로 둔갑하던 장면과 박진감 넘치던 배경음악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에서 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가면무도회에서의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잔잔하게 흐르는 러브스토리 배경 음악과 강렬하게 부딪치는 둘의 눈빛, 얼굴의 하관과 눈빛을 볼 수 있는 로미오의 반쪽짜리 가면이 벗겨지면서 사랑의 여로가 시작된다.

해마다 보는 핼로윈 가면부터 최근에 본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가면까지 대부분의 가면에서는 은폐와 상징과 신비감이 감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조형품 가면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느 정도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화장, 사진술, 협찬받은 의상으로 치장한 자신의 모습은 가짜였다며, 소셜미디어 속의 클릭 숫자로 정의되는 자신이 비참했다고 고백한 인스타그램 스타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벗은 자유로운 영혼에게 박수를 보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도 가면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슬픔, 상처, 분노 같은 감정이 우리를 요동치게 할지라도 굳이 티를 내고 싶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까지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을 때, 잔잔한 미소 머금은 가면 하나 뒤집어쓸 수 있겠다. 말을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 때 입매 야문 가면 하나 또 꺼내야 할 것이다.

매사가 시큰둥하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임형주가 썼던 화려한 터프가이 가면이나 차지연의 깜찍한 캣츠걸 가면 쓰고 노래나 불러볼까. 아니, 배트맨 가면 쓰고 공중을 날거나 로미오 가면 쓰고 무도회로 떠나볼까. 아니 아니, 보기만 해도 덩실덩실 어깨춤이 날 것 같은 우리의 하회탈이 제격이겠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