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나에게 온전히 몰두하는 아름다움

posted May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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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로 보이는 앳된 여자아이가 춤을 춘다. 동네 공원 초록 잔디 위에서 친구인지 선생님인지 모르지만 대여섯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도취된 듯 너울너울 춤을 춘다. 춤추는 자태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배워서 잘하는 몸짓이 아니라 몸 속에 춤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음악 소리가 들려오면 길거리든 차 속이든 자연스럽게 몸이 출렁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춤이 생활화 된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삶의 유연성이 느껴진다. 요리 잘하는 사람, 말솜씨 좋은 사람, 자전거 잘 타는 사람 모두 부럽지만 춤 잘 추는 사람이 나는 조금 더 부럽다.

춤의 영어 낱말인 댄스의 어원은 '생명의 욕구'를 뜻한다고 한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체가 리듬을 타는 것이니 생명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겠다. 친구들과 춤이 있는 불빛 휘황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내 몸짓이 어색하게 느껴져 쭈뼛대다 나왔던 기억이 찜찜하게 남아있다. 춤이 양성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춤추고 싶은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던 친구가 있었다. 끼. 요즘엔 예술가 기질로 봐 줬을 텐데 그때는 부정적인 의미가 다분했다. 그렇든 말든 제 감정을 자연스럽게 분출하던 그 몸짓이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우리 아이들도 춤추는 데 별로 소질이 없어 보인다.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아 그나마 다행이다. 한인이 드문 애리조나 시골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우리 아이들은 바이올린과 함께 미국 문화를 좀 더 가까이 접할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혹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학교와 교회, 박물관, 극장, RV 파크 ,공원 등 여러 곳에서 다양한 성격의 연주회를 가졌다.

조금 큰 도시인 샌디에이고로 이사 와서도 아이들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일일이 차편을 해결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이 샌디에이고 유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 활동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발보아파크 클럽하우스였는지 다운타운의 어느 유서 깊은 호텔이었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비엔나의 어느 밤(A Night in Vienna)'이라는 댄스 공연을 위한 연주회가 있었다. 커다란 홀을 가득 메운 커플들, 미 전역에서 모여든 댄서들이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서양 영화에서나 보았던 댄서들의 화려한 의상도 눈부셨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엔나 왈츠에 맞춰 춤추는 광경은 정말 황홀할 지경이었다.

왈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니 춤도 살고 음악도 살아났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TV 화면 속의 연예 프로그램과는 달리, 유럽 어느 황실 대관식 파티에라도 참여한 듯한 생생한 설렘이라니. 댄스에 대한 환상을 지울 수 없어 에어로빅과 포크 댄스 같은 생활체조에 발을 들여놔 봤지만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막막함에 일찌감치 손들고 말았다.

사람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귀히 여기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여자 아이의 모습에서 존재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나만의 것을 찾아 몰두하고 싶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