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보물단지와 애물단지

posted Jun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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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뚱한 미니 그릴, 스멀스멀 빠져나온 기름기가 받쳐놓은 용기에 가득하다. 기름기 쪽 빠진 베이컨 넣은 샌드위치를 건강식이라며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네댓 번 사용 후 찬장 한구석으로 밀려난 미니 그릴, 공짜나 다름없는 세일에 짐 하나 또 만들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갖 음식 재료를 자르고 갈아주는 요술쟁이 커팅머신, 처음에는 너무 편하다며 찬사가 늘어졌건만 도무지 거창해서 몇 번 사용 후 넣어두고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 그 외에도 빵틀, 만능주서기, 빙수기, 슬로우쿠커, 전기 포트, 보온 밥솥 등등. 1년에 한두 번 사용할까 말까 하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집안 곳곳에 박혀있다.

얼마 전에는 이웃 분이 누룽지를 어찌나 바삭바삭하니 얇고 고소하게 잘 만들었던지 누룽지 만드는 기계를 하나 살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반 프라이팬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자주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단다. 그냥 가끔 얻어먹지 뭐, 염치없는 선택을 하며 돈도 굳고 짐도 줄인 것 같아 괜히 내가 기특했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마켓에 가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신상품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저것만 가지면 보장될 것 같은 건강 혹은 편리함 때문에 물건 살 때의 첫 마음은 언제나 산뜻하다. 오픈키친 주택 구조가 늘어나면서 디자인이 완전 예술인 세련된 주방용품들이 여심을 더욱 자극한다. 집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사지 말자, 하면서도 슬그머니 들여놓은 용품들로 공간이 더 좁아지고 있다.

요즘 내 주위에는 실버타운이나 모빌홈으로 집의 규모를 줄여가는 가정이 부쩍 많아졌다. 아는 선배는 멀쩡한 살림살이를 주위에 나눠준다고 바쁘다. 당신이 사용할 때는 최고였지만 주고도 별로 인사 못 듣는 용품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처분을 해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살림살이로 한탄 소리마저 터져 나온다. 집 팔려고 혹은 이사할 집 정해놓고 한꺼번에 정리하려면 엄청 힘드니까 미리미리 없앨 것 없애야 한다는 진심 어린 충고의 말씀이 간곡하다.

당시의 표정으로는 더 이상 사지 않을 것 같지만 새집에 맞는 작은 가구나 소품을 들여놓고 새 출발의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자녀들을 염두에 두고 구매하던 예전과는 달리 어른 위주의 용품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시기도 이즈음인 것 같다. 변화의 과정이 대부분 비슷한 줄 알면서도 먼 나라 이야기인 듯 실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사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보물단지가 될지 애물단지가 될지 잘 모른다. 돈 좀 주고 샀어도 꾸준히 애용하면 제값을 하는 것이고, 세일 혹은 광고에 혹해서 샀다가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애물단지가 되는 것 같다. 집에 손님이 와도 간단하게 밖에서 사 먹는 일이 잦으면, 무엇보다 주부가 부엌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보물단지도 애물단지로 전락시킬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고민이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6.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