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연희

폐가(廢家)

posted Aug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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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廢家)

                                       오연희

빅베어(Big Bear) 산길 오르다 보면
길가 무성한 나무 사이로 언뜻 
거무튀튀한 알몸 보인다
몸을 닫고 싶다는
아니 열고 싶다는 통째 입이 되어
가는 불러 세운다

스르르 커튼 열리고 환호하는 속의 생명들

짓는 남정네의 콧노래 소리 풋풋하고

아낙의 몸인 통나무 굴곡지다

탱탱하게 익어가는

햇살 같은 아이 잉태 때마다 웅성거린다

몸담을 짓고 마음 담을 아이 낳고

, 별빛 반짝하는 순간이라니

찾아 숲을 떠나는 아이들

아이 기다리던 어미.아비도 총총 떠나고

 

이생의 내력 들려주려는가

풍화되기 직전의 알몸  

땅을 붙든다


 - 2016년 미주문학 여름호-


03.gif

오연희<폐가(廢家)>는 소멸로 향해가는 폐가의 적막한 아름다움을 "풍화되기 직전의 알몸 한 채"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가족들의 웃음과 활기참으로 가득 채워졌을 한 채의 집이 그 소명을 다하고 쓰러져가는 애잔함, 시인의 상상력은 그 다 쓰러져가는 몸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어떤 건축가는 "자신이 세운 집이 시간에 따라 소멸하기를 바란다"는 뜻밖의 진술을 한 바도 있지만, 이 시는 집 짓는

남정네의 콧소리가 들리고 통마무 결처럼 굴곡진 아낙의 몸과 햇살같은 아이의 잉태를 불러옴으로써 그 집이 한창 융성했을 때의 "별 빛 반짝이는 순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과 있습니다.

빈집이 일탈을 꿈꾸는 시적 순간입니다.


폐가를 채워왔던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시인의 사유(思惟)를 같이 따라가면서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든 독자인 나도

그 "이생의 내력"을 골똘히 생각해봅니다.


김현자 교수의 시평 (2016 미주문학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