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야박해진 국내선 비행기 인심

posted Sep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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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누군가 그곳에서 왔다 하면 괜히 반갑고 간다 하면 내 마음도 함께 달려간다. 딸이 그곳으로 이사간 후 생긴 증상이다. 같은 미국땅인데 나들이 한번 하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지. 벼르고 별러 2년 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착륙하자마자 '얼큰한 음식 먹고 싶어' 먹자 타령이 흘러나온다. 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음료수 한잔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언제 없어진 건지 쿠키나 땅콩같은 허기 면할만한 간식조차 없다. 음식은 돈 주고 사 먹으란다. 한 번 사 먹어 본 유쾌하지 않은 경험 때문에 배고픔을 꾹 참는다.

영화나 볼까 싶어 준비해 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앞에 있는 손바닥만한 TV를 켠다. 돈 주고 보란다. 무려 8달러. 인심 사납다 싶다가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순이겠지, 클릭 세상을 통해 산 좋은 가격의 비행기 표를 보며 고개 끄떡이는 심정이 된다.

국내선도 국제선처럼 음식을 제공하던 때가 있었다. 기내식 먹는 재미, 어린 시절 소꿉놀이 할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정말 조그만 일탈의 즐거움이었다. 이젠 아침 든든히 챙겨 먹고 나눠 먹을 새참 준비도 해서 옆 동네 마실가는 기분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좀 성가시긴 하겠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국내선의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는다면 창밖의 환상적 풍광이다. 화장실 가기 편한 통로 쪽을 선호하다가 창 쪽을 선택해서 얻은 수확이다. 느슨하게 펼쳐놓은 구름 사이로 듬성듬성 동네가 보이다가 더 높이 올라가면 비행기 아래로 황홀한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날씨가 화창하면 웬만큼 높은 곳에서도 땅의 풍경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동부와 서부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또 깊은 산과 평원의 장엄함에 압도당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좋은지 다채롭고도 풍성한 자연에 가슴 먹먹해진다.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비행기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TV 지도를 보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봤거나 가보고 싶은 명소를 통째 감상할 수도 있다.

음료수 한 잔뿐이라며 투덜댔지만 내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더 큰 기쁨을 위해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배고픔이고 창밖을 관찰할 여유가 있을 만큼의 허기였다.

늘 잊고 살지만, 먹을 것이 없어 못 먹는 이들의 배고픔을 잠시 생각한다. 육신의 병이나 수술로 인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떠올린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 먹을 것이 있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함께 먹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음식을 특별히 가려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등. 먹는 것과 관련한 평범한 말들이 감사의 조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국내선의 추세가 그렇다면 예전에는 '밥 같이 먹게 기내식 많이 먹지 마!' 했는데 이젠 내리자마자 '얼른 맛난 것 먹으러 가자!'가 될 것 같다. 비행기에서 내려 직행한 한국식당의 얼큰한 따로국밥 한 그릇 얼마나 맛있었는지, '최고!'를 외치며 엄지손가락 높이 치켜든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