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카톡 뒷북녀'의 카톡 유감

posted Mar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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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는 친구·자매·가족끼리의 카톡, 오가는 대화 속에 사랑과 유머가 넘쳐난다. 상황에 딱 맞는 이모티콘에 절로 터지는 웃음, 한참 웃고 나면 엔도르핀이 퐁퐁 솟는 것 같다. 마음 트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감성을 자극하는 유익한 펌글이나 그림은 서로를 향한 호감을 전달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정말 요즘은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주고받는 소통의 장으로 카톡이 대세인 것 같다.

이렇게 즐거운 면도 있지만 어쩌면 좋아, 고민하게 만드는 일도 왕왕 생긴다. 몇 해 전 카톡 붐이 불 일듯 일어날 즈음이다. 막역하게 아는 그녀가 오십 명이 넘는 그룹 카톡방을 만들어 나를 멤버로 넣은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카톡방을 오픈한 딱 그 한사람. 이건 무슨 경우야, 하는데 갑자기 카톡방에 다다다다 난리가 난다. 톡에 참여한 이들은 서로 친한 듯한 너덧 명. 소리 죽이는 방법도 나가기도 몰랐던 때라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카톡 소리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카톡 사용법을 조금 터득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역시 일어난다. 타주에 사는 한 선배는 정말 부지런히 카톡을 보내온다. 그런데 자기 메시지는 없고 온통 펌으로 도배를 한다. 영상과 글이 유익하고 감동적인 줄 알지만, 양이 엄청나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클릭을 안 하고 있으면 그 방은 나가고 다시 새 방을 만들어 보내기를 계속한다. 외로워서 그런가, 시간이 넘쳐나나, 별생각이 다 든다. 바로 그때 "늘 카톡이나 안부를 보내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당신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펌글이 도착한다.

최근 들어서의 새로운 현상은 소식 끊긴 지 한참된 옛 지인들이 뜬금없이 보내오는 카톡이다. 카톡의 주 내용은 한국 정치 관련 펌글이다. 처음에는 반가움에 인사드리지만 예민한 사안이라 반응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수십 명의 그룹 카톡방을 오픈한 다른 한 지인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낸 펌글에 멤버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스스로 나가 버렸다. 몇몇 카톡을 통해 한국 상황을 바라보는 미주 한인의 시각이 양분되어 있음을 느끼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친구들 사이에 카톡 반응이 늦은 편인 나는 자칭 '뒷북녀'이다. 얼마 전에는 카톡 세상 좀 잘 따라잡을까 싶어 머리를 굴리던 중 '33세 주부의 감동글'이라는 펌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려운 살림에 혼자 계신 시아버지 잘 모신 며느리의 사연인데 정말 감동적이다. 이렇게 좋은 글은 남에게 보내도 좋을 것 같아 몇 분에게 보내드렸다. 그런데 보낸 후에야 몇 해 전부터 카톡을 통해 널리 퍼져있는 사연이며, 그분들이 나한테 보낸 내용 중에 이미 들어 있음을 알고 '아뿔싸' 했다.

그 글뿐이랴. 좋은 글은 넘쳐나고 카톡을 통한 소통의 문은 활짝 열려있는데 내 삶의 긍정적인 변화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글에 감동한 후 전달도 좋지만 자신에게 적용해 보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현실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만드는 소통의 장이 되도록 카톡 매너도 좀 익혀야겠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