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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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Chuck2017.10.23 03:42

두 여성 덕분에/김동길 칼럼


나의 오늘이 있는 것은 용재 백낙준 박사와 바보새 함석헌 선생 두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한 분은 나의 인생 길을 열어 주셨고 

또 한 분은 나의생각을 바로잡아 주셨기 때문에 
나의 오늘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사실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분의 여성이 있어서 나를 키워주신 사실 
또한 의심 할수 없습니다. 나의 어머님(方信根)과 나의 누님(金玉吉) 
두 분이 안계셨다면 내가 무엇이 되었을까 

생각할 때에 끔찍한 생각이 앞섭니다.
가난한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영양실조가 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일제시대와 해방 뒤의 혼란 속에서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악당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나의 어머님은 기독교적 신앙을 가지고 나를 키우셨습니다. 저녁 끼니를
끓일 쌀이 떨어져도 걱정을 안 하시고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쓸겠냐?”라고
말씀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나의 어머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셨기 때문에 절대로 굶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으셨습니다. 

옛날 세월에
보통학교 3년밖에 다닌 경험이 없으신 분이지만 
신구약 성서에 능통하시어

한 인간으로서 매우 유식한 분이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나의 누님은 유명한 여자대학의 총장 노릇을 18년이나 하셨지만 언제나
겸손한 한 시대의 유능한 지도자이셨습니다. 
군사 정권 하에서 내가 안양교도소에 가 있던 추운 겨울날 

오재경 선생이 무슨 일로 이화여대 총장실에
들렀더니 총장 집무실에 난방이 전혀 안 돼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 선생이
“왜 이렇게 추운 날 이렇게 추운 방에서 일을 보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김옥길 총장이 대답하기를 “내 동생은 이 추위에 감방에서 덜덜 떨고
있을 텐데 누나가 어떻게 따뜻한 방에 앉아 일을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언제 생각해도 누님의 그 말 한 마디는 동생인 나를 울립니다.

내가 미국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우리 옛집을 헐고 
2층집을 지었는데

본디 우리 아버님이 누님 명의로 사 주신 이 가옥을 동생인 내 이름으로
명의를 변경하여 서재 겸 응접실도 매우 크게 만들어 놓고 

“네가 장차 많은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방을 좀 크게 만들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누님만 가까이 계시면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두 여성이 나를 사랑으로키웠고 두 스승이 나를 사랑으로 가르쳐 

오늘 김동길이라는 한 노인이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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