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아름다운 마지막 풍경

posted Oct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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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아름다운 마지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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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배 후 이웃 권사님이 교회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남편 집사님이 입원해 계시는 병원에 모시다 드리게 되었다.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집으로 돌아오길 원하셔서 모셔 놓았지만, 이머전시로 다시 입원하게 되셨다며 권사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팔순의 권사님 역시 몸이 성치 않으셔서 음식을 제대로 못 드신다고 한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남편 그림자라도 있는 게 좋은데, 라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그날은 종일 '그림자'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무겁게 드리워졌다.

환절기라서인지 주위에 편찮으시거나 세상을 뜨시는 분이 부쩍 많아졌다. 시부모님과 친정아버지 모두 떠나 보내고 친정엄마 한 분 남고 보니, 그것도 자매들과의 카톡을 통해 나날이 더해만가는 엄마의 건강 이상 증세를 접하는 나로서는 연로하신 분들 모두가 나의 부모님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병 가서 종종 접하는 일이지만, 부부 중 그나마 조금 나은 한쪽이 아픈 분 곁을 지키고 있다. 자손들이야 시간 있을 때 다들 다녀갔으리라 짐작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부부야, 라는 말이 그저 나온 말이 아님을 알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어느 집사님의 임종 예배를 다녀온 남편이 감동을 받은 듯 병실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목사님이 기도를 시작하려니까 누워계시는 분이 손을 내밀더란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내가 그 손을 꼭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며 두 분이 어찌나 애틋한지 평생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짐작이 가더란다. 이전 다니던 교회가 멀었지만, 성가대 봉사를 잘 마무리 하고 싶어하는 아내를 위해 일 년 동안이나 운전해 주고 연습 끝날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 준 것과, 십 년 동안이나 주일 예배 후 꽃을 사 들고 장모의 묘소를 찾았다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감사 사연을 들으며,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 마지막 순간을 행복하게 만든 것 같다는 병실에서의 느낌을 전했다.

이분들처럼 따뜻한 부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잘 맞지 않아 갈등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더라는 어느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며, 세월이 주고 간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어르신들의 어눌한 몸짓과 말투를 보며 늙음이 한순간에 몰아닥친 재난만 같아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우리의 세월도 저렇게 가겠지, 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가꾸면 조금 늦춰지는 듯한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 기능은 떨어져 간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생명의 이치라 생각하면 늙음 자체가 외로운 것은 아닌 것 같다. 평안한 그림 한편 같은 남편이 전해 준 임종 예배를 떠올리면 사랑하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는 것이 더 외로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추워지고 몸이 오슬거리고 마음도 허해지기 쉬운 겨울이 머잖았다. 인생의 겨울이 닥치면 마음을 꼭 껴안아 줄 누군가가 필요할 것 같다. 함께한 세월만큼 서로의 존재 가치가 크고 깊어지면 좋겠다. '그림자'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으로 손 꼭 잡고 기도하는 모습이 풍경처럼 아름답기를.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