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마음 비우고 여여하게 살아

posted Dec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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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저녁 서울사시는 시누이가 전화를 해 왔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아주 힘들게 꺼냈습니다. 요즘 미국경제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데 괜히 비행기 값 들여가며 한국 나올 필요 있겠나 싶어 장례를 치룬 후 나중에 알려 줄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로 몇 시간 전 남편이 어머니 목소리 듣고 싶으니 전화 좀 바꿔달라고 전화 드렸을 때 이미 돌아 가셨던 거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얼른 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알아보았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있을 장례식에 참석하려면 동경을 경유해서 가는 대한항공편이 가장 빨라 선택의 여지없이 예약을 했습니다.


94세에 돌아가신 어머니, 그렇게 애통할 것이 없을 만큼 오래 사셨다고는 하지만 이제 저희 가족이 한국에 가는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손들을 한자리게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었습니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만나기가 힘든다는 형제들도 일년에 한 두 차례 저희들이 어머니 뵈러 갈 때면 한데 모여 정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한 비행기는 한국시간 일요일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의 겨울날씨 치고는 포근했습니다. 셀폰을 빌린 후 공항 리무진을 타고 어머니가 사셨던 시누이 댁으로 갔습니다. 두 아들 모두 결혼시키고 혼자된 큰 시누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증세가 부쩍 나빠졌던,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의 어머니의 상황을 전해 듣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시차 때문인지 새벽 3시가 되니까 저절로 눈이 떠져 이런저런 생각만 많아졌습니다.


월요일 아침 어머니가 잠들어 계시는 경찰병원으로 각지에 흩어져 살던 자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모였을 즈음 관을 닫기 직전의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섭씨 2도로 사흘동안 냉장 보관되어 있던 어머니의 볼을 만졌습니다. 조금 차긴 했지만 금방 깨어나실 것처럼 부드러웠습니다. 병원버스 짐칸에 어머니가 잠드신 관을 넣고 자손들은 버스에 올라타서 화장터가 있는 벽제로 갔습니다. 산 자손들과 죽은 어머니가 한차에 타고 가는 길 그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를 태우는 장면을 창을 통해 볼 수도 있었지만 전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손자들 몇은 교대로 창밖에 앉아 지키고 그 외의 자손들은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맛이 괜찮은데…’ 입맛도 다시면서 더러 웃기도 하면서 맛있게 먹어치웠습니다. 이럴 때는 배도 고프지 말고 입맛도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명 있음이 슬펐습니다.


한줌의 재로 장남인 애들 큰 아빠의 품에 안기신 어머니, 영이 떠나버린 인간의 끝은 이런 거구나…참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솔직히 어머니의 영은 어디로 가셨는지 전 모릅니다. 딸들이 교회 가자고 말하면 “난 너무 늙었어 너희들이나 잘 믿어…” 하시곤 그만이었습니다.


'女必從夫'의 도를 따라 일생을 사셨던 어머니, 가슴에 쌓인 한일랑 모두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안하게 쉬소서… 막내며느리인 저에게 베푼 사랑은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유골이 든 조그만 상자를 들고 납골당이 있는 용미리 ‘추모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벽은 온통 조그만 서랍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를 빼서 어머니 유골이 든 상자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총 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근처에 사격훈련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만있어도 늙으면 죽을 텐데 저 총은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 걸까요? 왜 죽여야 하는 걸까요?


요란스러운 총격소리를 들으며 추모의 집을 떠나왔습니다. 한 세대는 갔습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다음세대의 죽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 비우고 여여하게 살아…” 서로의 신앙관을 존중해주며 마음을 터놓고 사는 편인 불심이 깊은 막내시누이가 말했습니다. 그 말이 왜 이리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새벽기도에서는 기도가 다 끝난 후 양팔을 버쩍 들어 올렸습니다. 가끔 그러는 분들을 보면 ‘참 별나네…’ 생각했었는데 누가 보든 개념 치 않고 그 분을 높이고 싶어졌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조용히 그 분께 부탁도 드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뒷마당에 나가보았더니 한국 가기 며칠 전 뿌려놓은 잔디 씨가 싹을 띄워 초록바늘이 소복하게 돋아 있었습니다. 마술과 같은 사랑의 힘으로 생명은 저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눈부신 하루를 주신분을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 다 보았습니다. 참 맑기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2008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