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오바마 오씨

posted Apr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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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잘난 척하는 요소에는 집안자랑 자식자랑 재산자랑 학벌자랑 인물자랑 등등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자랑말고 아주 특별한 자랑을 하던 이웃이 있었다.


직급이 높으신 분의 아내에게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그 외에는 누구 엄마 라고 아이이름을 앞에 부르고 뒤에 엄마를 붙여 부르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한 이웃과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 처녀적 이름을 불러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결혼 후 잊고 살았던 내 이름을 먼저 내놓았다. '연희'에요. 이름을 말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성(姓)이 나왔다. '오' 라고 동복 오씨라고 내 본(本)을 말했다.


그런데 그 이웃 분이 갑자기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은 '전두환 전씨'라고 하는 것이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였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저러랴 싶어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이웃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농담 같지가 않았다. 그런 본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였다. 결국 자랑스러운 성만 밝히고 끝냈기 때문에 그 이웃의 이름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난 미국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리에 얽힌 온갖 수난의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그리고 들었다. 그때마다 난 '전두환 전씨' 라고 힘주어 말하던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보면서 혼자서 짠해지곤 했다.


성이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러워 하는 판이니 대통령 당선자와 조그마한 인연의 꼬투리라도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랑하고 싶을까. 하지만 혹 지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로 인해 목이 간질간질한 분이 계시다면 조금 참았으면 싶다.


이번에는 정말 믿지만 기대를 져버렸던 역대 대통령들 때문에 노파심이 생겨서 하는 소리다. 5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그 날에도 처음 가졌던 그 자랑스러움이 그대로 남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아쉽게도 역대 대통령들과 그리고 이번 이명박 대통령 통틀어 나와 실오라기만큼도 닿아있는 인연의 끈이 없다. 워낙 뭐가 없으니까 배가 아파서 이런다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요즘 나도 그때의 그 이웃처럼 내 입장을 밝히고 싶은 일이 좀 있다. 우리 오씨 가문 중에 두드러지게 내놓을 만한 분이 없어 내심 기가 죽었었는데 이번 미국대통령 후보 중에 가장 유력한 분의 성이 바로 오씨다. 오…바마라고.



-미주중앙일보- 2008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