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장모누나 시언니

posted Mar 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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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아홉 살에 결혼한 이웃이 있었다. 그 딸도 열 아홉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마흔 살에 장모님 소리를 듣게 된 그 이웃을 보고 너무 이상하다며 웃어댔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그 이웃에게 어떻게 할머니 소리를 듣겠냐며 걱정까지 해 주었는데 정작 본인은 손자가 생기니까 할머니 소리를 전혀 개의치 않고 은근히 손자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그녀처럼 그렇게 일찍 결혼한 것도 아닌데 생머리와 청바지 차림의 완전 미스로 보이는 아줌마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세련된 단발머리나 발랄한 퍼머머리에 미스들이나 입는 줄 알았던 최신 유행 옷차림도 자신 있게 소화해낸다. 나이 가늠하기가 힘들면 슬쩍 아이가 몇 살 혹은 몇 학년 이냐고 묻는다. 그렇게 큰 아이가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면 십중팔구는 배시시 행복한 표정이다.

나는 절대 서른 너머까지 살지 않겠다고 깜찍한 아니 끔찍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삶의 기쁨을 젊음 혹은 아름다움에 두었던 모양이다. 십대나 이십대의 혼란이 적지 않았음에도 서른 넘으면 인생의 낙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나이에 맞게 주어지는 삶의 기쁨이 있는 줄 짐작도 못했다. '아줌마' 라는 이름이 이렇게 당당하게 불리어지는 세월이 올 줄은 더 더욱 생각지 못했다.

결혼 날짜를 받은 후 아가씨와 아줌마의 경계를 긋는 첫 관문이나 되는 것처럼 미장원에 가서 긴 생머리 싹둑 자르고 보글보글 숨도 못 쉬게 볶았다. 머리가 짧으면 짧은 대로 길어지면 긴 채로 또 볶았다. 볶고 또 볶았더니 머리카락이 몸서리를 쳤다. 퍼머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인데 왜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아줌마들은 아가씨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중이다. 유행이 젊은이들만의 소유가 아닌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젊은이 못지않은 패션 감각으로 눈길을 잡는 아줌마들을 보면 기분이 상쾌하다.

딸이나 아들과 다니면 언니나 누나로 보인다는 소리에 더욱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멋도 부지런해야 낼 수 있다. 마음이 젊어지면 행동도 활발해 진다. 당당한 그녀들은 직장 일도 집안일도 자녀교육도 야무지게 꾸려나간다.

이십대 초반에 결혼하게 된 딸로 인해 장모님이라고 불리어지게 될 상황의 유난히 앳된 얼굴을 가진 친구에게 장모는 너무 해 사위에게 '장모누나'라 부르라고 하면 어때? 라며 친구 중에 누군가가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딸은 젊은 시어머니에게 '시언니' 라고 해야겠네 옆에서 거드는 한 마디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멋지게 차려 입은 까마득한 선배님께 관심의 눈길로 다가갔더니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나 아줌마 같지?'라고 하신다. 그 말을 해놓고 당신도 이상한지 겸연쩍게 웃으시면서 '어… 나… 할머니네…' 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마음은 아가씨구나…' 싶은 생각에 코 끝이 시큰거렸다. 장성한 자식들과 손자손녀가 있어도 그들을 잘 양육시키고 사랑하는 일과는 별도로 결코 늙지 않는 선배님의 마음을 보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가씨에서 아줌마를 지나 자녀의 결혼과 함께 장모 혹은 시어머니로 불리다가 할머니가 된다. 마음처럼 되어지지 않는 것이 몸이지만 상황에 맞게 주어지는 생각의 변화가 젊음 못지않게 여자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인간'으로 살면 끝나지 않는 것이 무지 많을 것이기에.



2009년 10월 23일 미주중앙일보 -살며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