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이 아침에] 주인공 아니어도 기쁜 이유

posted Feb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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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페이스북을 둘러보던 중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국의 조카 방을 클릭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랑이 만들었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지난 크리스마스 만찬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상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미국 사는 나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서양 요리들이다. 사진 아래에는 '고마워요…남편' 이라는 조카의 멘트과 함께 빨간 하트가 빛나고 있었다. 행복에 겨운 조카의 얼굴을 떠올리니 빙긋이 웃음이 났다.

이번에는 미국 사는 친구 아들 방을 찾아갔더니 더 멋진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동안 사귀어 오던 여자 친구에게 청혼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바닷가를 배경으로 찍은 프로포즈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친구 아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하는 자세고 여자 친구는 '어쩌면 좋아'라는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는데 두 사람의 설레는 가슴이 온 바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같았다. 신세대들의 사랑과 결혼이 모두 저렇게 달콤하고 로맨틱한지는 모르지만 세월은 분명히 달라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자녀들을 보면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을 바라볼 때처럼 신비롭다. 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말은 간단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연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아픔이 있었건 공부하느라 혹은 경력을 쌓느라 연애할 틈이 없었건 독신주의자가 아니라면 포기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 중에 오직 그 한 사람을 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생 사랑하며 살기로 만인 앞에서 약조하는 결혼식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그 기적을 목격하는 날이 많아질 것 같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만 초대하는 단출한 결혼식이든 아는 분 모두를 초대해서 치르는 열린 결혼식이든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랑 신부의 모습은 언제나 황홀하다. 저 순간을 맞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서로에게 완전한 신뢰를 심는 일도 양가 집안의 흡족한 기쁨이 되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으리라.

결국, 사랑을 선택한 신랑 신부를 축하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사뿐사뿐 입장하는 신부를 보면 왠지 코가 시큰하고 신부를 맞는 신랑의 가슴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하객들 앞에서 나누는 신랑 신부의 키스 장면에 이르면 힘찬 박수와 함께 진심어린 축하의 환호가 터져나온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가 자신의 부모와 또 상대 부모와 포옹하는 모습에서는 만감이 교차할 것 같은 그들의 심정이 느껴져 목이 메일 때가 있다.

아내를 위해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한 조카의 남편, 무릎 꿇고 청혼하는 친구 아들, 사람들을 초청해서 치르는 결혼식, 이 모든 이벤트가 일상의 삶을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여기저기 숨어있는 일상의 복병들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젊은 세대들의 사랑의 이벤트가 남의 일이 아닌 세월이 온 모양이다.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고도 한없는 기쁨을 누리는 부모라는 자리, 세월이 안겨준 귀한 선물이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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