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이 아침에] 엄마표 '해물 깻잎 김치전'

posted Feb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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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먹을 일이 참 많다. 한식당이나 중식당에서의 만남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 외에도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 나는 햄버거와 피자도 좋아하고 월남국수와 멕시코 음식 부리토도 좋아한다. 드물게는 싱싱한 생선회가 있는 일식집이나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한 스테이크 집에도 간다.

그런데 대부분 나라 음식들이 풍성한 밑반찬을 곁들인 한식에 비하면 손이 훨씬 덜 가는 것 같다. 그릇 숫자와 그릇의 무게를 생각하면 한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의 수고에 감사가 우러난다. 건강을 생각해 잡곡밥을 제공하고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한식당이 늘고 있어 그 또한 고맙다. 하지만 어느 나라 음식이든 건강에 좋든 아니든 외식을 자주 하다 보면 집의 음식이 그리워진다. 부엌에 하얀 김이 오르고 집안에 음식 냄새가 솔솔 풍기면 '집'이 '가정'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집을 떠난 후 부엌이 썰렁해졌다.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때가 오고. 해도 끝도 없고 표도 안 나는 부엌일. 그럼에도 가족들이 잘 먹어주는 것이 기쁨이었던 날들이 있었다. 엄마가 만드는 것은 다 맛있어. 엄마는 요리사 같아. 조잘대며 맛있게 먹어주던 아이들이 있어 따뜻했던 부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풍경이다.

부모 품 떠난 우리 아이들 제 갈 길 가느라 참 바쁘다. 그러나 한 해가 바뀔 즈음이면 거의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연말연시였다. 오랜만에 네 명의 가족이 모여 집에 뭉개고 있으니까 엄마인 나는 온종일 동동거려야 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이 어찌 그리 빨리 오는지. 늦잠 자고 일어난 애들이 시리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는 정오도 되기 전에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친다. 점심 저녁을 일찍 해 치웠더니 늦은 밤에는 뭔가 생각난다는 듯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괜히 엄마 주위를 맴돈다.

그날 밤 김치전을 부쳤던 모양이다. 구박덩어리가 된 신김치의 국물을 쪽 빼내고 쫑쫑 썰어 깻잎 풋고추 오징어를 역시 적당하게 썰어 부침가루와 밀가루 갠 것에 넣어 골고루 섞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달궈서 한 숟가락씩 펴서 구웠더니 도마에 썰 필요가 없고 먹을 때마다 새콤한 김치가 자근자근 씹히고 깻잎의 향도 좋고 오징어 맛도 즐길 수 있었다.

이상하네 왜 갑자기 막걸리가 생각나지? 그때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간식으로도 괜찮고 좀 싱거우면 양념장을 맛있게 만들어 살짝 찍어 먹으면 밥반찬으로도 좋은 김치전.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김치전과 막걸리는 천하 제일의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말을 나중에서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어느 추운 겨울밤 친정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안주로 드시던 김치전 한쪽을 내 입에 넣어주시던 아버지의 거나한 표정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김치전 속에는 친정아버지의 불그레한 모습이 보이고 '엄마가 만든 것이 젤 맛있다'던 우리 아이들의 낭랑한 음성이 귀를 간지럽힌다.

문밖을 나가면 온갖 맛있는 요리가 구미를 돋우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해물깻잎김치전' 만큼 입에 딱 붙는 음식은 드물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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