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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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새롭다. 빛은 더 환해지고 하루하루가 새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를 맞이하는 것 같다. 창밖에는 키 큰 나무 이파리들이 새해를 축하하는 깃발처럼 나부낀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떤 모습으로든 결국 마무리되고 새해를 맞았다. 작년이 되어버린 지난 달, 황당했지만 무사히 해결되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다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인터넷 뱅킹으로 은행잔고를 확인하다가 이상한 금액이 내 눈에 번쩍 뜨였다. 누군가 두 장의 가짜 체크로 적지 않은 돈을 빼간 것이다. 사용하려면 한참 순서가 먼 체크 번호에 내 사인이 들어가 있었다. 나의 가짜 사인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디로 보낸 체크로 가짜를 만들었는지, 도저히 감을 잠을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즉시 은행에 전화로 신고하고 다음날 메인 오피스로 찾아가 이 일을 수습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은행원이 친절하고 자상해 마음이 차츰 안정되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에 오니 체크가 가짜로 판명되어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이 도로 입금됐다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사기당한 것은 속상하고 번거로웠지만, 미국은행의 즉각적인 조치에 놀랍고 감사했다.

연말연시 선물용품을 사려고 인터넷 쇼핑을 했다. 잦지는 않지만 평소에도 꽃, 약, 옷 같은 것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편지와 함께 바로 배달하는 인터넷 쇼핑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공신력이 있는 사이트를 주로 사용하지만 가끔 낯선 사이트에서 제품을 살 때도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대체로 만족했기 때문에 큰 의심 없이 한 사이트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선물용 가방을 구매했다.

일주일 후에 물건이 도착했다. 보낸 주소가 중국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포장지를 뜯자마자 독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발송지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아 반품을 했지만 그 연락처가 엉터리라는 운송회사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싶어 가방을 샀던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이 온라인은 짝퉁을 판매하여 미국 연방법원의 명령에 의해 폐쇄됐다는 경고문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가짜 제품 구매로 손해를 입은 소비자는 물건구매에 사용한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환급을 받을 수 있다며 그 절차를 소상하게 안내해 놓았다. 가짜를 팔아 돈을 챙긴 건 악덕 상인인데 그 돈을 갚아준다고? 말도 안돼 하며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신용카드 회사 직원의 친절에 더 놀랐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남의 땅에 살다 보면 속 끓는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고객 혹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볼 때 미국은 정말 신용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나쁜 일을 당한 것인데 좋은 일처럼 기억에 남는 것은, 황당하고 갑갑한 심정을 차분히 받아주고 합법적이며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진정성 혹은 곧은 직업 정신 덕분이 아닌가 싶다. 체크 사용도 인터넷을 통한 구매도 매사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닫는다. 아무튼, 생생한 그 일은 모두 지난해의 일이다. 새해는 좋은 일만 생기는 복된 해가 되기 바란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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