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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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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1 16:18

따뜻한 이웃, 쌀쌀맞은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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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따뜻한 이웃, 쌀쌀맞은 이웃       

 

우리 집 현관 옆 창문에는 빨강 '경고(Warning)' 딱지가 붙어 있다. 시커먼 남자 이미지 위에 출입금지를 나타내는 사선이 그어져 있고 그 아래 'Member of Neighborhood Watch Program'이라고 적혀있다. 이 경고문을 보면 이웃이 '한 울타리 안의 공동체'라는 느낌이 든다.

담을 공유하고 있는 옆집이나 마주 보이는 집 사람들과의 인사말이 조금 길 뿐, 그 외는 거의 형식적인 '하이!'로 그만이다.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기에 한계가 많은 미국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인 이웃과도 가깝게 지내기가 쉽지 않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바쁜 생활도 그렇지만 공통 화제가 빈약한 경우 처음 몇 번 왕래하다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각별한 이웃 관계로 발전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우리 동네도 길 청소한다고 주차금지 시간이 적힌 푯말이 골목마다 붙기 시작했다. '깜빡'하면 티켓을 받게 된다는 것은 이전 동네에서 톡톡히 경험한 터라 월.화는 주차 가능한 쪽에 차를 옮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요일부터 긴장한다. 신경 바짝 썼음에도 주차금지 푯말 생긴 지 3개월 만에 위반 티켓을 받고 말았다. '아차' 하고 달려갔더니 바로 눈앞에서 단속 요원이 티켓을 떼고 돌아서는 순간이다. 자기 집 앞에서 받는 주차위반 티켓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티켓 한 번 받고 나면 차를 세우지 말아야 하는 쪽이 눈에 잘 들어온다. 지난 월요일이 그랬다. 비어 있어야 되는 쪽에 독불장군처럼 서 있는 낯선 차를 발견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던 길 멈추고 근처 몇 집을 마구 두드렸다. 주차위반 티켓 발부 직전에 차 주인을 찾았다. 놀라 뛰어나오는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아무리 신경 써도 통제 불가능한 '깜빡'은 점점 더 심해질 터이니 서로 돕는 수밖에 없다. 뿌듯한 기분에 자랑이 되고 말았지만, 사실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 참 많이 받고 산다. 한국에서 온 큰 시누이가 혼자 집을 지키던 중 내의 차림으로 뒷마당에 나갔다가 문이 안으로 잠겨 벌벌 떨고 있을 때 창문을 뜯어 구해 준 이가 옆집 톰이다. 쉽게 구비하지 못하는 정원이나 집 관리 연장 빌려줄 때 내 것 쓰는 기분이 들게 해주는 서글서글한 리사는 또 어떻고.

우리를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웃도 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옆 동네를 드라이브하던 중 스톱 사인 앞에 섰을 때다. 빵빵 경적 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한 남자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멀뚱하고 있었더니 '유어 네이버'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물론 쌀쌀맞은 이웃도 있다. 우리 집에서 큰 모임이 있던 날 건너 집도 무슨 파티가 있는지 집 근처가 온통 차로 가득 찼던 날이다. 마주 보이는 집 옆집에 카포트가 비어 있길래 좀 써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단번에 거절이다.

어쨌든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받을 확률이 더 많은 이민 생활이다. 우리집 빨간 경고 딱지의 실천이 수상한 사람 경계하는 일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일이 아니라고 지나쳐 버리지 말아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 나를 위하는 일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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