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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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9.06.15 12:57

물은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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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맞는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 통쾌한 샷, 푸근잔디 위를 걷는 풋풋함 등등…나이 들어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생활이라며 골프를 배우라는 압력(?)을 종종 받는다. 코치에게 충실히 레슨을 받은 후 몇 번 필드에 나갔지만 계속 하고싶다는 마음이 생기지를 않아 흐지부지 그만두고 말았다.

그처럼 달콤한 유혹(?)에도 꿈쩍하지 않을 만큼 나를 사로잡은 것은 '수영'이다. 매일아침 나는 YMCA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과 함께 한 어린시절의 나쁜 추억으로 인해 물에 대한 공포증이 오래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몇 해 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내 몸이 물에 뜬다는 사실을 알았고 코로 입으로 마구 물이 들어가는 고역을 치뤄 가면서 '물과의 어울림'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배운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어눌하기가 짝이 없겠지만 물은 언제나 몸을 편안하게 감싸 안고 무리 없는 움직임으로 나를 유도한다.

물과의 사귐을 지속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영선수 출신이 아닌가 싶을 만큼 자유자재로 헤엄쳐 나가는 이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신이 난다. 그 중 내가 한바퀴 도는 동안 무려 세 바퀴를 돌아 나의 눈을 휘둥그래지게 하는 그야말로 물찬 제비 같은 앳된 여성과 물 위를 배형으로 날렵하게 헤엄치는 팔순의 할머니는 내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물은 한쪽 몸이 마비되어 지팡이에 의존해 걸어 들어오는 그 할아버지에게도, 상체 근육이 유난히 발달한 그러나 한 쪽 다리가 짧은 그 남자에게도 그리고 무릎에 철을 박았다는 체중이 엄청난 그녀에게도 공평하게 친절하다. 헤엄치는 방법은 몰라도 괜찮다. 리더를 따라 각양각색으로 흔들어대는 율동 클라스 어른들의 표정이 너무 천진스럽다. 꼬맹이들이 몰려드는 주말은 잔치 한 마당 벌어질 판이다. 어디에선가 '와이엠씨에이~' 노래가 한 바탕 터져나올 것 같다.

물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같은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면 물은 아름다운 결정을 보여주고 반대로 저주의 말 혹은 부정적인 말을 들려주면 물의 모양이 어그러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준,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라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 속의 그림들이 떠오른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터이니 굳이 실험해 보지 않아도 수영장 물의 모양은 아름다울 것 같다. 아주 가끔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오늘은 쉴까…' 하는 마음이 가슴 한 구석으로 솔솔 파고 드는 날도 있지만 버둥거리며 끝까지 해낸 후의 승리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남녀노소 혹은 몸의 상태를 차별하지 않고 물은 변함없이 우리를 반기지만 물을 원망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수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수영이 주는 즐거움이 크긴 하지만 꽉 낀 물 안경 탓으로 눈 주위가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고 수영장 물로 인해 머리결의 윤기도 떨어진다. 골프치는 친구들은 신경을 많이 써도 얼굴에 잡티가 생긴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좋은 한 가지를 얻기 위에 희생해야 되는 부분은 언제나 있는 것 같다.

수영 후 샤워하고 YMCA 문을 나설 때 오늘 하루가 온전히 내 품에 안겨드는 그 기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손상이 가는 것은 외모! 얻는 것은 싱싱한 정신!. '체력은 국력'까지 가지 않더라도 '건강이 최고' 라는 소박한 바람으로 '풍그덩 풍그덩' 을 계속해야겠다.


-중앙일보<살며 생각하며>-

2009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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