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사람을 살리는 눈빛

posted Aug 3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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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바라보는 한국서 오신 큰 시누이의 양 무릎은 연골이 닳아 철을 박아 넣었다. 다리운동에 좋을 듯 싶어 수영장에 같이 가자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셨다. 한 번 가보고 편치 않으면 관두셔도 된다고 설득해서 모시고 갔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선명한 수술자국 때문에 한국에서는 장애자만 가는 복지관에 다니셨다고 한다. 탕 안에 들어가려다 말고 멈춰 서서는 찜찜해 하는 눈길로 흉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이 더러 있어 일반수영장은 피한다고 하셨다. 주눅들게 하는 누군가의 눈빛이 떠 올라 가슴이 써늘했다.

흉터가 무슨 장애라고…중얼거리다가 번쩍 한 공간이 떠올랐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랑부'. 고백하자면 장애를 가진 우리의 자녀들이 있는 그 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몰랐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누군가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잠시 숙연해 지기도 했지만 특별한 은사를 타고난 '그 누군가가 할 일'이라는 듯 얼른 내 마음의 끈을 잡아 당기곤 했다.

얼떨결에 방문하게 된 사랑부. 교육부 건물 저 안쪽에 자리잡은 아늑한 그 곳에는 사람을 살리는 눈빛들이 살고 있었다.

전도사님을 비롯하여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오셔서 장애우들을 보살핀다는 어느 교회 장로님 키가 멀쑥한 청년 어여쁜 여선생님 그리고 여러 학생들이 장애우들과 함께 어우러져 웃고 떠들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봉사해 온 우리 자녀들 중에는 대학이나 대학원 혹은 박사과정을 하면서도 꾸준히 나와서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며 바로 저 학생들이라며 눈짓으로 말해 주었다.

많은 봉사자들이 있지만 장애우 한 사람에 한명 이상의 봉사자가 필요한 그곳에는 사랑의 손길이 늘 아쉬운 곳이라고 한다.

사랑부에서 3년을 봉사하셨다는 H집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봉사하겠다고 오는 학생들이 계속 나올 것인지 아닌지는 한 달 안에 결정이 난다고 한다. 살리는 눈빛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아차리는 장애우들의 예민한 감각이 결단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가슴이 뜨끔했다. 빤히 들여다보일 내 속을 얼른 가리고 싶었다.

나이가 든 장애우를 언니, 오빠라고 부르며 일일이 보살피는 그 여선생님과 장애우 곁에 앉아 음식을 흘린 입가를 냅킨으로 정성스레 닦아주는 그 남학생 또한 그곳의 여러 봉사자들을 보면서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눈빛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부모님이 권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사랑부에서 봉사하고 있더라던 이웃의 자녀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두 번 봉사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맑은 영혼들을 우롱하지 않는 지속적인 관심은 억지로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기형인 귀를 갖고 태어난 아들을 둔 친구가 있다. 굳이 밝히지 않으면 눈치도 못 챌 장소이지만 누구를 만나든 상대편의 얼굴 중 귀가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혹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비슷한 아픔 하나쯤 가지지 않는 이 어디 흔할까.

총 중에 가장 무서운 총이 '눈총'이라면 빛 중에 가장 찬란한 빛은 '눈빛' 일 것 같다. 한 사람의 빛이 비록 희미할지라도 함께 비춘다면 그 밝기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의 전도사님 말씀에 듣는 이 모두의 눈빛이 사뭇 깊어졌다.


[살며 생각하며][2009. 8.29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