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6
어제:
11
전체:
1,292,190

이달의 작가
조회 수 70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국에 사갈 것도 또 사올 것도 없다고 하지만 오랜만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무엇을 사갈까 적잖은 고민이다. 비싼 명품 척척 갖다 안기면 좋지만 그럴 마음도 그럴 형편도 아니다. 생각만 열심히 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집 가까이 있는 몰에 나갔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가끔 사용하던 화장품 메이커 부스에 들렀다. 낯선 판매원이 일정금액의 화장품을 사면 공짜선물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 사라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그녀의 태도에 신뢰감이 느껴져 며칠 후 그곳에서 화장품을 샀다. 돈 주고 산 화장품도 좋지만 선물이 정말 알차다.

온 김에 2층으로 올라가 양말과 스타킹을 몇 개 골랐다. 돈을 지급하려는데 캐시어가 다음 주 수요일부터 25% 세일에 들어가는데 돈은 지금 세일값으로 지급해 놓고 세일하는 날 찾아가면 된다고 일러준다. 아무 말 안 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제 값 주고 샀을 텐데 싶어 괜히 고맙다.

오래 전 한국에서 옷을 살 때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옷을 사기전에 으레 세일이 언제냐고 물으면 "우리는 잘 몰라요. 없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세일할 때면 이런 옷은 안 남아요. 치수가 없어서 못 팔아요. 그냥 사시죠" 이렇게 대답한다. 그 말을 믿고 옷을 샀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세일이었던 적이 있었다. 기가 막혀서 옷 들고 가서 차액만큼 환급해 달라고 따졌다. 그러면 또 하는 공식 멘트가 있다. "우린 정말 몰랐어요. 회사 방침이 그러니까요."

환급은 절대로 못 해주겠다고 하지만 사납게 따지는 사람들에겐 환급해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통을 터트렸다.

재작년 한국 갔을 때 딴 세상에 온 것처럼 황홀했던 한 백화점의 전경이 떠오른다. 손님을 대하는 판매원들의 태도는 또 얼마나 정중하던지. 진열된 상품가격에 기가 질려 살 엄두는 못 냈지만 서비스는 놀랍게 달라진 것 같다. 그런데 저렇게 비싼 제품 사 가지고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나? 너그러운 미국의 반품문화에 길든 탓인지 혼자 걱정을 해 보았다.

국민성과 전통과 처해있는 사회 환경이 달라서 어느 나라의 상거래 문화가 좋다 아니다 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국 사는 사람들은 미국 문화가 편안할 것이고 한국사는 사람들은 한국문화가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한국도 미국처럼 공짜선물 날짜나 세일 기간을 미리 알려주고 반품도 쉽게 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반대로 미국도 한국처럼 선물기간이나 세일 날짜를 말해주지 않고 반품도 어렵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 본다. 미국 판매 문화가 참 허술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연말이 지나고 나면 반품하는 여자옷 특히 파티복이 부쩍 많아진다는 말을 어느 분에게 듣고보니 좋은 제도를 악용하는 소비자도 생기는 모양이다.

아무튼 난 그녀들의 조언으로 공짜선물도 챙기고 양말과 스타킹도 싸게 샀다. 그런데 화장품 사러 다시 가고 양말 스타킹 픽업하러 간 김에 또 다른 물건을 샀다. 상술에 내가 넘어간 것 같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3년 3월 19일)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9 다이어리 1 오연희 2007.01.24 772
228 숨쉬는 것은 모두 빛이다 오연희 2006.07.05 771
227 시월의 시카고 오연희 2004.10.27 770
226 수필 절제의 계절 오연희 2012.05.04 770
225 창밖을 보며 오연희 2004.11.10 768
224 수필 [이 아침에] 한복 입고 교회가는 날 (12/21/13) 오연희 2014.01.23 768
223 가을 오연희 2005.10.05 761
222 수필 [이 아침에] 기찻길 따라 흐르는 마음 여행 오연희 2013.07.08 759
221 수필 겁쟁이의 변명 1 오연희 2012.09.23 757
220 광주에 가다 1 오연희 2005.03.02 752
219 따땃한 방 오연희 2004.08.05 751
218 Help Me 1 오연희 2006.07.13 748
217 개에 대하여 1 오연희 2005.02.02 748
216 낮잠 오연희 2004.05.22 748
215 그랜드 케뇬 1 오연희 2006.06.14 743
214 김치맛 오연희 2003.07.08 742
213 오연희 2006.08.09 740
212 그런 날은 1 오연희 2006.01.11 740
211 휘둘리다 오연희 2006.08.23 739
210 한지붕 두가족 오연희 2006.02.23 738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