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9
어제:
4
전체:
1,291,804

이달의 작가
수필
2016.06.20 11:53

보물단지와 애물단지

조회 수 144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우뚱한 미니 그릴, 스멀스멀 빠져나온 기름기가 받쳐놓은 용기에 가득하다. 기름기 쪽 빠진 베이컨 넣은 샌드위치를 건강식이라며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네댓 번 사용 후 찬장 한구석으로 밀려난 미니 그릴, 공짜나 다름없는 세일에 짐 하나 또 만들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갖 음식 재료를 자르고 갈아주는 요술쟁이 커팅머신, 처음에는 너무 편하다며 찬사가 늘어졌건만 도무지 거창해서 몇 번 사용 후 넣어두고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 그 외에도 빵틀, 만능주서기, 빙수기, 슬로우쿠커, 전기 포트, 보온 밥솥 등등. 1년에 한두 번 사용할까 말까 하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집안 곳곳에 박혀있다.

얼마 전에는 이웃 분이 누룽지를 어찌나 바삭바삭하니 얇고 고소하게 잘 만들었던지 누룽지 만드는 기계를 하나 살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반 프라이팬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자주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단다. 그냥 가끔 얻어먹지 뭐, 염치없는 선택을 하며 돈도 굳고 짐도 줄인 것 같아 괜히 내가 기특했다. 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마켓에 가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신상품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저것만 가지면 보장될 것 같은 건강 혹은 편리함 때문에 물건 살 때의 첫 마음은 언제나 산뜻하다. 오픈키친 주택 구조가 늘어나면서 디자인이 완전 예술인 세련된 주방용품들이 여심을 더욱 자극한다. 집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사지 말자, 하면서도 슬그머니 들여놓은 용품들로 공간이 더 좁아지고 있다.

요즘 내 주위에는 실버타운이나 모빌홈으로 집의 규모를 줄여가는 가정이 부쩍 많아졌다. 아는 선배는 멀쩡한 살림살이를 주위에 나눠준다고 바쁘다. 당신이 사용할 때는 최고였지만 주고도 별로 인사 못 듣는 용품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처분을 해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살림살이로 한탄 소리마저 터져 나온다. 집 팔려고 혹은 이사할 집 정해놓고 한꺼번에 정리하려면 엄청 힘드니까 미리미리 없앨 것 없애야 한다는 진심 어린 충고의 말씀이 간곡하다.

당시의 표정으로는 더 이상 사지 않을 것 같지만 새집에 맞는 작은 가구나 소품을 들여놓고 새 출발의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자녀들을 염두에 두고 구매하던 예전과는 달리 어른 위주의 용품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시기도 이즈음인 것 같다. 변화의 과정이 대부분 비슷한 줄 알면서도 먼 나라 이야기인 듯 실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사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보물단지가 될지 애물단지가 될지 잘 모른다. 돈 좀 주고 샀어도 꾸준히 애용하면 제값을 하는 것이고, 세일 혹은 광고에 혹해서 샀다가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애물단지가 되는 것 같다. 집에 손님이 와도 간단하게 밖에서 사 먹는 일이 잦으면, 무엇보다 주부가 부엌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보물단지도 애물단지로 전락시킬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고민이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6.18일자

?
  • Chuck 2016.06.21 01:20

    Good Morning to you out there ,오 시인님..


    지난 주말부터 남가주에 닥친 폭염( Extreme Heat Wave )이 121도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경신한 가운데 남가주 전역이 용광로와 같은 극한 더위로 몸살..

    오 시인님은 어덯게 cool off 하셨는지..
    Thank you for that sharing & posting you send these Essay..

    I hope stay keep in that COOL OFF..

    Have a Smile Day..

    from Chuck D B..

  • 미미 2016.06.22 07:07
    어쩜 글을 이렇게 맛나게 읽기 쉽게 쓰세요?
    역시 수필가 이십니다. 그래요, 저도 이사할때 '" Less is better, less is better.."
    되뇌이며 과감히 정리를 했는데 또 많이 끌고 왔더라구요.
    맞아요, 누구한테 그냥 주는것도 실례가 될떄가 있죠. 늘 부지런하신 여니님!
    사랑해요
  • 오연희 2016.06.23 04:20

    최무열 선생님...
    덕분에
    저도 무사히 더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멋진 한국이름 사용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늘 감사해요.:)

  • Chuck 2016.06.23 05:43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에서 찜통더위에 시달리는 개들을 위해

    수영장 개설소식..

    See What's happening right now ...


    "https://www.youtube.com/embed/8WPBzc4KvqQ" 



  • 오연희 2016.06.23 04:28
    미미님
    흔적 반가워요.^^
    글쓰는 분 한테 듣는 칭찬은 황송하고....기분이 엄청 좋아요. :)
    저도 좀 더 차원 있는 내용을 쓰고 싶은데...정치, 경제같은...ㅋ
    용기를 주시니 고마워요. 알랴뷰 투!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9 비밀하나 털어놓고 싶은 날 1 오연희 2006.02.23 916
228 블랙 엥그스 오연희 2012.03.20 728
227 수필 북한 억류 선교사를 위한 기도 편지 오연희 2015.08.21 301
226 부두에서외 빠진 글 보관-말걸기/ 오연희 2003.08.20 859
225 수필 부고에서 읽는 세상살이 4 오연희 2016.10.19 404
224 봄인데 1 오연희 2006.02.08 812
223 수필 봄을 기다리며 1 오연희 2009.01.20 1326
» 수필 보물단지와 애물단지 5 오연희 2016.06.20 144
221 별 이야기 1 오연희 2005.11.30 992
220 밥심 1 오연희 2007.07.25 1105
219 밥솥 1 오연희 2007.01.10 654
218 수필 발칙한 미국 할아버지 오연희 2003.10.02 888
217 발 맛사지 1 오연희 2006.05.10 1138
216 반쪽의 슬픔 오연희 2005.03.16 568
215 수필 바탕이 다르다, 는 것에 대하여 1 오연희 2012.07.12 674
214 수필 바이올린 오연희 2009.04.10 1964
213 바닷가에서 1 오연희 2008.05.30 1457
212 수필 미스터 션샤인 OST 2 file 오연희 2018.11.14 423
211 수필 미국에서 꿈꾸는 '지란지교' 오연희 2015.07.06 223
210 뭉클거림에 대하여 1 오연희 2006.10.11 824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