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6
어제:
36
전체:
1,292,172

이달의 작가
수필
2016.05.10 11:32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들

조회 수 135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람을 맞이하고 또 보내기 위해 공항에 자주 간다. 공항에 근접하면 LA 공항의 영문표기 LAX가 눈에 들어온다. X가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 찾아보았다. 비행기 짐표에 붙이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코드인 LAX가 유명해져서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거나, X 모양이 활주로 비슷하다 해서 공항 대신 사용되었다는 등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그냥 3자리 수를 맞추기 위해 의미 없는 글자 X를 넣어 'LAX'라는 공항 코드가 탄생했다고 한다.

20년간 LA시장을 지낸 '톰 브래들리'를 따라 이름 지었다는 국제 터미널 앞을 지날 때면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아 눈길이 한 번 더 머문다. LAX, 우리 가족이 처음 입국한 공항이고 또 자주 다니다 보니 정이 들었나 보다. 신비와 동경의 감정으로 바라보았던 공항이 한국의 기차역처럼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항 곳곳, 사람이 쏟아져 나오는 곳으로 사람이 몰려든다. 좁아터진 좌석의 시간을 잘 견뎌낸, 방금 비행기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에서는 작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앞만 보고 묵묵히 제 갈 길 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를 기다리는 이와 눈이 마주친 듯 빙긋 웃는 사람, 가볍게 팔을 흔드는 사람, 폴짝대며 뛰어나오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이다. 가끔 껴안고 빙빙 돌며 요란을 떠는 사람도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절로 알게 된다.

카트 수북이 큰 가방을 여러 개 싣고 나오는 사람도 눈에 띈다. 처음 미국 올 때 우리도 저랬나 피식 웃음이 난다. 짐을 찾기 위해 수화물 수취대에 빙 둘러섰을 저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불쑥 미국 입국 첫날의 에피소드가 화두가 되었을 때 나누었던 한 이웃의 사연이 펼쳐진다.

어린 딸과 함께 빙빙 돌아가는 수화물 수취대의 가방들을 살피며 서 있었단다. 저기 자기 집 가방이 하나 나타나자 반가움에 다가간 딸이 가방을 잡는 순간, 가방은 무겁고 아이는 가볍고 컨베이어 도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고, 그만 아이가 가방에 딸려 가버렸다. 어어 하는 사이에 가방과 아이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놀란 엄마는 울고 불고 근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함께 걱정하고. 컨베이어 터널을 통과한 아이가 터널 밖으로 나타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는 말에 웃음보가 터졌다.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지 결코 웃을 일이 아닌 사연들이 꼬리를 문다.

사람을 맞으러 가는 길은 즐겁지만 보내러 가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한국서 온 친지도 보내고 남편 출장도 보내고 다른 주에 사는 딸도 보내고. 게이트 안으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기차 타러 갈 때면 입장권 끊어서 짐 올려주시고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아버지, 저 한쪽 뒤에서 기차 꼬리를 향해 손 흔드는 엄마. 찡한 마음 주체할 수 없어 한참을 차창만 바라보았던 학창 시절의 기차역, 그 추억의 한 자락이 공항까지 따라오기도 한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5.10

?
  • Chuck 2016.05.10 12:04
    또 하루..
    모멸을 삭인 웃음
    적막에 쌓여 하룻날을 보낸다
    이 별은 먹먹한 눈빛을 모아
    자전을 하는지도 몰라
    쓸쓸함으로 버티는
    삶 하나
    버리면 그만인데
    겨울하늘 떠도는 별아
    너도
    허망의 공전축에 묶이었느냐 (송 poet)

    https://www.youtube.com/embed/SYGBMetkMH0"
  • 오연희 2016.05.19 04:16
    시 잘 감상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9 수필 [이 아침에] 멕시코 국경 너머 '오늘도 무사히' 8/28/14 오연희 2014.08.30 540
368 수필 [이 아침에] 멕시코에서 생긴 일 오연희 2013.04.30 485
367 수필 [이 아침에]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나이 12/19/2014 오연희 2014.12.30 236
366 수필 [이 아침에] 못 생겼다고 괄시받는 여자 1/24/2015 오연희 2015.01.25 56
365 수필 [이 아침에] 부족함이 주는 풍요로움 오연희 2013.08.28 559
364 수필 [이 아침에] 북한 여성 '설경'에 대한 추억 오연희 2013.10.21 591
363 수필 [이 아침에]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5/8/2014 1 오연희 2014.05.08 414
362 수필 [이 아침에]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들 10/29 오연희 2013.12.08 690
361 수필 [이 아침에] 산책길에서 만난 꽃과 사람 6/20/14 1 오연희 2014.06.20 497
360 수필 [이 아침에] 선물을 고르는 마음 오연희 2012.11.27 668
359 수필 [이 아침에] 성탄 트리가 생각나는 계절 11/13/2014 오연희 2014.11.26 389
358 수필 [이 아침에] 슬픔마저 잊게 하는 병 오연희 2013.07.31 486
357 수필 [이 아침에] 아프니까 갱년기라고? 7/15/14 1 오연희 2014.07.17 522
356 수필 [이 아침에] 애리조나 더위, 런던 비, LA 지진 4/7/14 오연희 2014.04.09 478
355 수필 [이 아침에] 엄마표 '해물 깻잎 김치전' 오연희 2013.02.15 994
354 수필 [이 아침에] 연예인들의 가려진 사생활 오연희 2013.04.30 716
353 수필 [이 아침에] 우리 인생의 '하프 타임' 7/2/14 1 오연희 2014.07.17 291
352 수필 [이 아침에] 이육사의 '청포도'는 무슨 색일까? 오연희 2013.09.25 806
351 수필 [이 아침에] 잘 웃어 주는 것도 재주 오연희 2013.02.15 670
350 수필 [이 아침에] 제 잘못 모르면 생사람 잡는다 오연희 2013.07.31 58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