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연희

무너진 나무 한 그루

posted Jul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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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나무 한 그루


-위안부 할머니시여   -                                                            

 

산책길에

넘어져 있는 늙은 나무 한 그루

둥치가 들린 채 벌렁 누워있다 

 

뿌리들 사이로 삐져나온 지하수 파이프는

둥치를 깊숙이 관통한 채

꽂혀 있는 닙본도(日本刀)

 

살아 있는 심장에 찔러 넣어

죽어도 빠지지 않는 칼날을 붙잡고

아, 아직 피를 토해내고 있는

몸부림치는 소리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한마디만 해 달라 그리 외쳐대는데

인두겁을 쓴 저 짐승들

끝까지 짐승으로 남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발걸음만 재촉하며 돌아가는데

삐죽 솟은 지하수 파이프 위에는

다람쥐 한 마리 올라앉아 있고

나무는 이제 곧

토막토막으로 잘려나가 사라질 모진 생

눈물겨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