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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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켓에 가면 유명한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잡지가 계산대 근처에 수북이 꽂혀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쩌다가 얼굴이 익은 사람이라도 나오면 살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한번 만져보거나 몇 페이지를 펼쳐 보곤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면 내 아이들이 꼭 한마디 한다.

"엄마 이 책들의 내용은 거의 다 만들어 낸 거예요." "설마 그럼 그 연예인들이 가만 있겠니?" 그 후는 자기들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 한번 들썩 올리고는 그만이다.

식당이나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신문이나 여성지의 연예란을 펼쳐 볼 때도 있다. 싱싱하고 예쁜 연예인들의 연애담이나 드라마를 소개해 놓은 짤막한 내용을 흥미있게 읽는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 연예인들의 근황이 피부에 잘 와 닿지도 않고,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져 웬만한 이야기는 대부분 돌아서면서 잊어버린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본 TV 속의 한 여자 탤런트가 내 마음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오래 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한 지인의 친구분은 자기 아들이 한국의 모 연예인과 사귀는데 그녀의 뒤를 조사해봤더니 행실이 단정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을 불러놓고 그 여자와 계속 사귀면 부자의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셨다. 아들이 그런 복잡한 여자와 사귀는 것은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용납할 수 없다는 그 아버지의 단호함에 내 가슴이 서늘했었다.

그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신문 연예란에 이름도 사진도 정확하게 인기 여자 탤런트 누구랑 미국 사는 누구랑 사귀고 있는데 곧 남자 쪽 부모에게 인사를 할 예정이라는 뭔가 이야기가 잘 엮어져 가는 듯이 나와 있었다. 분명히 그 친구분의 아들 이야기를 하는 건데 기사는 내가 아는 사실과 전혀 달랐다.

그후 십수 년이 흘렀고 TV 화면 속의 그녀도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싶어 인터넷으로 그녀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조금 늦은 나이지만 좋은 남자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두 자녀 키우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소년소녀 가장과 무의탁 독거 노인돕기 활동에 중점을 둔 장학회를 만들어 운영, 많은 기부금을 내어 장애인을 돕는 등 더불어 사는 삶의 귀감이 되어 있었다. 그일을 위해 대학원에서 관련학과까지 공부한 그녀의 열정을 보며 허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연예인은 화려하고 개방적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으로 빛을 발하는 인기인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한 연예인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 혼자 즐겁다.

매스컴이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휘청거리지 않고 선한 목표를 향해 부단히 애써 온 그녀의 길을 상상해 보며 드라마 속의 그녀를 더욱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3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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