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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 잦은 연말연시 어디든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모임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일 수도 있고 모임의 성격에 따라 그 방면의 전문가를 초청하는 때도 있다.

일단 그런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분위기가 한결 밝아진다. 그들이 사용하는 유머 중에는 갓 탄생한 최신 버전도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사람들을 더욱 유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상황에 딱 맞는 절묘한 말로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는 순발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유로운 영혼이 지닌 발랄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느 날 어디 나도 한번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제법 긴 그 스토리를 빡빡 외웠다. 마침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가 있길래 기회는 이때다 싶어 침을 꿀떡 삼키고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이목이 쏠린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중간에 그만 내가 먼저 깔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야! 지가 다 웃어버리고….' 그렇게 김이 새고 말았다.

미련이 남아서 다시 한 번 시도를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진지했다. 나의 행동을 눈치챈 친구가 안쓰럽다는 듯 '그냥 하던 대로 해~' 한마디 툭 던진다. 왠지 좋아 보이는 남의 옷을 입어보려다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래 다른 사람의 재미난 말에 잘 웃는 것도 재능이야 자신을 위로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평소 입담 좋기로 소문난 어느 분에게 머리가 진짜 좋은가 봐요 메모리 실력도 대단하고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어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나오는지 부럽다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그의 답인즉 이야기가 늘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혹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 앞이라야 혹시 실수나 실언을 해도 웃어 넘어가 주는 아량이 느껴져야 재미있는 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얼굴색을 바꾸거나 반박의 태세를 취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뻥긋하기가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이다. 상대가 불손하게 대해도 개의치 않고 일관성 있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할까. 차갑고 퉁명스러운 가판대 주인에게 예의 바른 행동으로 대처한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시드니 해리스에게 "왜 저렇게 불손한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나?" 라며 친구가 물었더니 "왜 내 행동이 그 사람 태도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지?" 라고 했다는 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무조건 친절하자'는 인생철칙이라도 세워놓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상대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태도에 지나치게 예민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담담한 것도 평범한 사람이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우리 보통 사람들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마음이 활짝 열려 웃음판을 신나게 벌일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기다려주고 무엇보다 웃어야 하는 순간에 뒤집히게 웃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웃는 것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잘 할 수 있는 확실한 재능일 터이니. 새해에도 실력을 발휘하며 살자.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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