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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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9.04.10 04:40

좋은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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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는 화요일은 길 왼쪽에 수요일은 오른쪽에 차를 세우지 못하게 되어 있다. 도로 청소를 위해서인데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에 차를 세워놓으면 가차 없이 티켓이 발부된다. 하루 이틀 시행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이다. 가끔 먼데서 오신 손님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세워놓았다가 티켓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거주하고 있는 분들이 티켓을 받는 경우가 더 빈번한 것 같다. 아침에, 그것도 내 집 앞에서 주차위반 티켓을 받았을 때의 억울하고 짜증스러운 기분, 경험해 본 분들은 알 거다.

신경 써야 한다고 그렇게 여러 번 잔소리를 했건만 아들도 두 번 티켓을 받았다. 차고에 있는 내 차와 남편차가 쉽게 나오도록 카포트는 비워두고 스트릿 파킹했다가 당했던 일이다. 절약 좀 해 보겠다고 개스 스테이션을 찾아 헤맸던 것도 허탕이 되었다. 대신 벌금을 내주고 싶다가도 정신 차리라고 매몰차게 돌아서야 하는 엄마 마음도 쓰렸다.

매일 아침 YMCA에서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8시쯤이어서 경찰이 티켓 발부하는 광경을 수시로 목격한다. 아들의 심정을 헤아린 탓인지 차를 세우면 안 되는 쪽에 파킹되어 있는 차를 보면 마음이 더 다급해져서 차가 세워진 집 현관으로 달려가서 마구 노크를 해댄다. 대부분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만 누구 차인지 모르겠다며 기분 떨떠름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눈을 부릅뜨고 살핀다.

얼마 전 수영을 마치고 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찰차가 첫 번째 집 앞에서 티켓을 떼고 있었다. 아, 한발 늦었군, 하고는 왼쪽 길을 쭉 살펴보았더니 저 멀찍이 우리 옆집쯤으로 보이는 집 앞에 차가 한대 서 있었다. 순식간에 들이닥칠 것 같아 부리나케 운전을 해서 가 보았더니 역시나 나의 옆집 쿠바 할아버지네 차였다. 전날 저녁 할아버지 네에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친척들이 잔뜩 와서 왁자지껄 하더니 아마도 깜빡 한 것이 틀림없다.

차를 얼른 세워놓고 마구 뛰어가서 현관 벨을 눌렀다. 으악, 경찰차가 첫 번째 집 티켓발부가 끝났는지 빨강파랑 신호등을 번쩍거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힘차게 문을 두들겨댔다. 도무지 기척이 없었다. 남편에게 할아버지 차 옆에 붙어 있으라고 눈짓을 했다. 말 안 해도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제야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의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내 얼굴 표정과 번쩍거리는 경찰차 그리고 할아버지 차 옆에 딱 붙어 있는 나의 남편을 보고 상황판단이 끝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빛이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경찰이 남편에게 몇 마디 하더니 알았다는 듯 미적거리며 갔다. 얄미운 경찰님! 참말로 ‘멜롱’이네요. 속으로 큭큭 웃음이 났다.

몇 해 전 신문구독을 일시 멈추는 것을 깜빡 하고 연말연시 가족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돌아와 보니 쿠바 할아버지가 열흘 분의 신문을 몽땅 모아뒀다가 내놓았다. 집 앞에 신문이 뒹굴고 있으면 빈 집인 것을 알게 된다며 앞으로는 꼭 자기들에게 부탁하고 떠나라고 조언도 해 주었다. 좋은 이웃을 둔 그날의 기쁨도 좋았지만 좋은 이웃이 되어준 기쁨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주한국일보 '삶과 생각'-
   2009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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