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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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학캠프 참여차 가까이 사는 선배 언니와 한 차로 가게 되었는데 차창 밖 저 멀리 큰 꽃나무들이 얼마나 탐스럽던지. 미국에는 희한하게 생긴 꽃이 참 많아, 조잘조잘 차 안에서부터 캠프의 즐거움은 시작되었다. 그중 붉은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꽃나무가 내 눈길을 붙잡았다. '우윳병 씻는 솔같이 생긴 저 빨간 꽃, 이름이 뭔지 혹시 아세요?' 선배 언니를 향해 무심한 듯 한마디 던졌다. 'Bottle brush!' 간단하게 답하신다. '설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였더니 진지한 음성으로 '맞다!'고 하신다. '어머 어머 이름이 어떻게 생긴 것과 똑같아요?' 감탄하며 깔깔 웃어댔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식물원이 있다. 딸이 어머니날 선물로 식물원 일 년 입장권을 끊어 주었다. 딸의 마음씀이 고마워 갈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세 명까지는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어 가족과도 가고 친구들과도 간다. 입구부터 '여기 공원 맞거든요' 광고라도 하는 듯 각양각색의 꽃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다. 한쪽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조그만 어린이 공원에는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널따란 초록 잔디 위에는 금방이라도 웨딩마치가 울려 퍼질 듯한 야외 결혼식장과 리셉션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오뉴월에 비해 탱탱함은 덜하지만 장미 가든도 볼 만하고, 선인장이 소복이 모여있는 곳의 길 이름 애리조나를 지나며 옛 생각에 젖어보기도 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생긴 모양 그대로의 식물 이름들이다. 마침 눈에 익은 바로 그 나무가 보이길래 '저기 저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빨강 꽃나무 이름 아는 사람 있나요?' 눈만 끔뻑, 답이 없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며 'Bottle brush!'라고 발음할 때의 으쓱함이라니. 하지만 나무에 대해 진짜 잘 아는 줄 알까 봐, 사실은 나도 얼마 전에 여차여차 알게 되었다고 얼른 고백을 하고 만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꽃이나 열매가 특이하다 싶으면 나무 둥치에 붙어있는 식물의 이름을 유심히 살펴보는 등, 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한 사람이 긴 끈 같은 줄기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에 쪼르르 달려가 이름을 확인하더니, '소시지 트리'라고 알려준다. '어머머 나무 이름이 너무해….' 소시지가 구르는 듯 웃어댄다. 나팔처럼 아래로 꽃의 목을 길게 늘어트린 노란 꽃 나무도 지나칠 수가 없다. '트럼펫 트리'란다. '어머머! 딱 트럼펫이네.' 웃음 연발이다.

병 씻는 솔, 소시지, 트럼펫 같은 것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익숙해진 이미지들이라 이름을 기억하기가 쉽다. 하지만 낯선 대부분은 그 나무와 함께했던 각별한 사연 혹은 관심 없이는 이름이 입에 잘 붙지를 않는다. 사람과의 인연처럼 자꾸만 마음이 가는 나무가 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해서 알게 된 이름 중에 꽃이 종이처럼 팔랑팔랑 날리는 정열의 꽃 '부겐빌레아'와 윤기나는 진녹색 잎에 커다란 순백의 꽃송이가 천상을 향하는 듯한 '매그놀리아 그란디플로라' 등 몇 가지가 있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든 생소한 이름이든, 하나둘 내 마음에 더해지는 이름으로 인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1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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