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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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넷인 우리집은 하나 건너 소질이 비슷하다. 언니와 바로 밑의 여동생은 노래에 관심이 많다. 언니는 피아노와 기타를 잘 치고 가수의 길을 생각한 적이 있을 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 바로 아래 여동생 역시 노래를 잘한다. 성대결절로 대학상담 교사로 길을 바꾸긴 했지만, 중학교 음악 선생으로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나와 막내는 글에 관심이 많다. 나는 글을 쓰고 막내는 남의 글을 읽는다. 대입 논술 과외 선생인 막내는 자기는 남의 글을 읽고 평가하고 가르치는 것은 웬만큼 하는데 실제로 자기 글은 제대로 못 쓴단다. 몇 줄 쓰면 더 이상이 쓸 게 없다며, 글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학교 대항 음악 경연 대회 때마다 학교 명예가 걸려 있다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막내는 지도한 애들의 성적과 대학 입학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뉴욕의 명문 음악학교를 졸업한 조카가 있다. 공부를 많이 했지만 괜찮은 오케스트라 정식 맴버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얼마 전 오디션을 본다며 기도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뽑기 위한 오디션에 동부의 쟁쟁한 음악인 수백 명이 몰려들었는데, 예선과 결선을 거치는 모든 오디션은 심사위원이 가려져 있는 블라인드 심사로 치러진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을 보러 들어오는 사람이 헛기침만 해도 퇴장, 신발 소리만 내도 퇴장시키는 등 오디션 분위기가 얼마나 냉랭한지, 너무 떨려 안정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9명의 파이널리스트가 결정된 후에야 블라인드가 걷히고 인터뷰를 겸한 오디션이 이루어지는데 결과에 상관없이 부정이 틈탈 여지를 차단해 버린 것 같아 공평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은근히 궁금증이 인다. 소리만으로 탁월한 사람을 가려낼 만큼 심사위원들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하냐는 것과 정말 그렇다면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기준이 뭔가라는 것이다. 마침 조카가 집에 다니러 왔길래 은근히 물어보았다. 감성이 풍부하고 음악성이 뛰어나고 등등의 음악가로서의 소양을 나타내는 답이 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입에서는 "아니 그건 기본이잖아? 오디션을 보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 텐데 틀리냐?"라는 말이 나왔다.

옆에 있던 남편이 골프도 다르지 않다며 "기본 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매번 배운 대로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만 치면 싱글 하지. 거기에 알파가 더해지면 프로고"라며 한마디 거든다. '기본'이라는 말이 참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음악이 좋아서 열심히 하고 또 잘한다는 것은 '기본'이 꽉 차있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수준 있는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참여할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도 배운 기본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 감정에 거슬리면 '기본이 안됐다'고 규정하던 때가 있었다. '기본'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속을 가득 채우는 단단한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렁물렁한 내 속이 보이는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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