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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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가고파

2013.04.27 02:10

최무열 조회 수:143 추천:42




              오연희 시인님

      안녕하세요 "오 시인님"
      완연한 봄 온통푸르름..
      만발한꽃 향기로냄새로..
      기분이 상쾌한 오늘아침..
      제가 5월한달간 가족나드리할 예정임니다  
      잠시 자리을 비을예정이오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3 월달 소천하신 우리들의노래로 잘알려진
      "가고파"김동진선생의삶의추억을 함께할가함니다

    " 삶과 추억 " 작곡가 김동진씨 별세 (중앙일보기사 )

[삶과 추억] 작곡가 김동진씨 별세
‘가고파’ ‘내 마음’ 국민 심금 울려

‘한국의 슈베르트’로 불린 작곡가 김동진(사진) 옹이 지난달 3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6세.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고파’가 고인의 대표작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로 시작하는 ‘내 마음’도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목련화’ ‘못 잊어’ 등 그의 작품은 이전의 가곡에 비해 규모가 크고 형식이 자유롭다. 여기에 서정적인 선율과 화성을 더해 한국인의 감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고인이 남긴 가곡만 100편이 넘는다. 군가·동요 등을 합해 500편 이상을 작곡했다.

‘슈베르트’라는 별명을 얻도록 다작을 한 고인은 일찍 음악 교육을 받았다. 고인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목사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교회 음악을 배우면서 음악의 구조와 규칙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진학, 바이올린과 피아노·작곡 교육을 받았다. 맑은 느낌의 가곡 ‘봄이 오면’은 그가 18세에 만들었으며, ‘가고파’는 불과 스무 살이던 1933년 작곡했다.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 가곡 ‘뱃노래’ ‘파초’ 등 서정적인 작품을 계속 내놨다.

50년 6·25 전쟁 중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에 정착한 뒤 서라벌예술대학과 경희대 음대에서 후학을 길렀다. 이 시기에는 ‘목련화’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심청전’ ‘춘향전’ 등 판소리를 가곡으로 만든 ‘신창악’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이때다. 84세이던 97년 오페라 ‘춘향전’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듣고 감명받았던 판소리를 50여 년 동안 연구해 완성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가곡은 물론 칸타타 등 대규모 합창곡으로 영역을 넓혔다.

고인의 제자인 작곡가 이안삼(66)씨는 “최근까지도 작곡을 계속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공연됐다고 하면 ‘젊은 작곡가들 무대도 부족한데 왜 자꾸 늙은이 노래를 부르느냐’고 했을 정도로 후배를 사랑했던 분”이라고 전했다.

작곡가 진규영(61·한국작곡가협회 이사장)씨는 고인을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곡 작곡가”로 꼽았다. 진씨는 “미성의 테너였기 때문에 목소리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끌어내는 데 능숙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유족은 아들 신영(사업)·신원(경희대 예술디자인대 교수)씨와 딸 신화씨가 있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빈소는 서울 회기동 경희의료원 장례식장이다. 02-958-9549.

김호정 기자


2009년 8월1일, 타계하신 다음날 아침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출구 앞
시장 골목 중간에 있는 간판도 없는 순대국집을 찾아가서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그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 참깨방송

김동진[金東振]

1913. 3. 22 평남 안주~ 2009. 7. 31 서울.

작곡가 · 신창악운동가(新唱樂運動家).

2대째 목사 집안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찬송가 등으로 서양음악을 접했다.

(혼자 오르간을 치는 모습에 재주가 엿보여 부친이 바이올린을 사주었다고 한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니면서 D. R. 말스베리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5학년 때 〈봄이 오면〉(김동환 작시)을 작곡했다.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다닐 때 양주동에게 배운 이은상 시(詩) <가고파>(1933) 를 비롯해서

(약관 20세에 작곡한 가고파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

김동환 시집을 애독하고〈발자욱> <뱃노래>등을 작곡해 재능을 인정받았고,

당시 애환에 공감을 불러 일으켜 국민적인 작곡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1936년 숭실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 후 1939년에는 만주 신경교향악단원으로 일하다가 해방 직후 평양음대 교수로

중앙교향악단을 조직하여 평양예술문화협회에서도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해산되면서 월남했다.

월남후 6·25 전쟁 중 육군 종군작가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십 곡의 군가를 작곡하여 군가작곡상(1952)도 탓고,

휴전 후 서라벌예술대학에 있으면서 국방부 정훈국 주최의 연주회에서 〈조국찬가〉를 작곡했다.

초기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영화음악도 작곡하여 청룡영화제 작곡상(1966)을 타기도 했다,

(지금 흐르는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 바로 영화음악으로 작곡된 곡이다.)

정부수립경축음악회에서〈승리의 길>을 작곡·지휘하는 등 지속적으로 정부에 협력하여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타고 19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은관 문화훈장도 받았다)

서라벌 예대를 거쳐 1963년부터 경희대 음악대학 교수를 지냈고,

1967년 음악대학장을 지냈으며 1978년 정년퇴임하여, 그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경희대 재직시 개교 25주년 기념 칸타타로〈목련화(1974)>를 발표했다.

정년퇴임 후 1979년부터는 신창악연구회를 조직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신창악은 한국 가곡의 단순한 형식, 감상성, 선율과 가사의 언어적 결합의 미비점을 극복하면서

판소리 창법을 서양음악 기법과 발성으로 노래할 수 있게 한 성악 음악을 말한다.

(신창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수가 드물어 김동진이 직접 노래하기도 했다)

신창악으로 〈심청전〉·〈춘향전〉의 다수 아리아를 작곡했다.

오페라 심청전 외 <신아리랑> <뱃노래> 등의 작품이 있다.

80대에도 오페라를 발표한 노익장!!!

90대에도 연주장에 나타난

평생 한국가곡인!

             독자 최무열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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