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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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작년에 이어  저의 가정의 연례행사인 연말연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월요일 아침 출발해선 토요일 밤에 돌아왔으니 꽉찬 6일이 되네요.
작년엔 렙탑 컴퓨터를 가지고 다녀 매일 즉슥 여행기를 올릴수 있었는데 이번엔 이상하게도 컴퓨터를 가지고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밤에 시간이 남으면 가족모두 책을 읽게되니 그 분위기가 그만이었습니다.
여행하면서 간단하게 메모해놓은 것을 기초로 해서 여행기를 적어 볼까 합니다.

이번엔 저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던 십년전, 그때 가족 여행했던 코스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당시는 3박 4일 코스라 그랜드캐년, 마블캐년,브라이스케년, 자이온케년 그리고 세도나를 둘러 왔었는데 이번엔 5박 6일로 잡아서 몇 개의 코스를 추가하게 되었지요. 오전 10시에 출발 거의 8시간이 걸려서 다다른 아리죠나의 명승지 그랜드 캐년을 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광야를 보면서 참으로 깊은 감회에 젖어 들었답니다.

그당시 두살 터울의 아들과 딸은 차 뒷자석에서 어찌나 투닥거리며 싸우던지 화가 나서 둘이서 실컷 싸워보라며 중간에 떨어뜨려 놓았답니다. 물론 걱정이 돼서 조금 가다가 되돌아와 데리고 갔었지만 싸우거나 자거나 둘 외에는 할 줄을 모르는 정말 걱정되는 아이들이었지요. 그러던 녀석들이 이젠 창밖에 펼쳐진 경치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조용히 카드놀이를 하다가 무릎에 동생을 누이고는 토닥거려주는 모습이라니…. 한 부모의 자녀로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10년이라면 그리 긴 세월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비싯 웃음이 나왔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식물이 자라지 못해 버려진 땅 광야!
누리끼리한 국방색 빛깔의 풀들이 듬성듬성 솟아 있기도 하고, 지대가 낮아 하얀 소금이 덮혀있기도 하고, 불이 난 것처럼 새까만 빛을 띤곳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 황량한 광야 사이를 가로질러 쭈욱 뻗은 프리웨이 위로 배나 자전거를 뒤에 매단 승용차가 달리고 때로는 승용차를 매단 큰 RV(Recreation Vehicle,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차)를 운전하는 여행객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라디오에선 컨츄리 뮤직이 구성지게 흘러나오니 미국땅 그 중에서도 서부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랜드 캐년쪽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는 곳쯤에서부터 캐년의 모습을 한 작은 등성이들이 병풍처럼 프리웨이 길 옆으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있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