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2
어제:
36
전체:
1,292,168

이달의 작가

심리적 촉수

2009.10.28 04:42

정혜신 조회 수:527 추천:105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관장은 자신이 보지 못하게 되면서

시각적 세계가 사라졌듯이 그 시각적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의 존재, 유령의 존재가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한번은 몹시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두르고 밖에 나간 적이 있어요. 내가 지팡을 두들기고 지나가니까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던지. 그때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어차피 앞도 안 보이는데
그냥 목도리로 얼굴을 다 감아버리지, 왜 목만 가리느냐’고
묻습디다.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2007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장애인, 비장애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감에 대한
근원적 고민에 골똘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읽는 내내 가슴에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더군요.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내가 유령처럼 취급받는다는 느낌에
때론 한없는 슬픔이 때론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또 때로는
끝간데 없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저릿저릿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존재의 사라짐이 ‘때로’가 아니라 ‘늘’ 그렇다면,
그 공포와 슬픔을 감당하기 어렵겠지요.
  
한때 단편영화제에 출품된 단편영화의 대부분이 ‘박찬욱스럽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요즘 소설가 지망생들은
김연수의 작품을 베끼면서 습작 활동을 한다지요.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왜 그런 말들이 떠도는지 알 만합니다.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못을 안 쓰고 꽉 맞춘 장인(匠人)의 한옥집처럼
절묘하게 부합하고 은은하게 아름답습니다.

소설 속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관장의 고백과는 반대로 ‘보여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가설을 저는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실감하는 때가 많습니다^^

[출처] 추천의 글: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작성자 정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