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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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기억 부수기

2005.04.25 20:38

김진학 조회 수:523 추천:121

기억 부수기 / 김진학 밤하늘이 무척 흐리다 아주 잘 쓸리는 싸리 빗자루로 군데군데 쌓인 구름을 눈 쓸듯 저 산 너머로 치웠으면 좋겠다 그믐밤의 겨울하늘이 황량하겠지 창을 열고 아래를 본다 3월인데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겨울이 눈꽃을 피우며 개나리 가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운다 그래도 베란다엔 입술을 연 군자란이 아름답다 인고(忍苦)의 시간들이 열 송이도 넘는 봉우리에 맺혀 미소를 짓는다 다시 창 밖을 본다 영하의 온도를 가르며 걷는 여자의 모습이 고독하다 멀어지는 여자 뒤로 지나간 시간들이 우수수 부셔진다 이처럼 추운 골목어귀에서 손을 호호 부는 아이들이 그립다 쇠죽 끓인 사랑방엔 두툼한 무명 솜이불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다리를 편 아이들이 산골이야기로 밤을 새던 날들이 아파트 베란다에 흩어지고 있다 이제는 다 떠나고 비었을 고향이 기억 속에서 하나도 늙지 않은 모습으로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