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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거리의 노인

2005.11.15 05:25

김진학 조회 수:446 추천:153

거리의 노인



길을 가다 허리를 꾸부리고 먼 산을 보는 남루한 할아버지를
보았다.  모두가 무심히 지나치는 할아버지의 순진한 얼굴이
나를 멈추게 한다.

“할아버지, 어디 불편하세요?”
“배가 너무 고파……. 걸을 수가 없어…….”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응, 뭐든지 먹고 싶은데……. 지금은 라면이 제일 먹고 싶어…….”
“할아버지, 이리오세요. 제가 라면 사 드릴게요.”

겨우 걷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애처롭다.

“할아버지, 연세가 얼마세요?”
“응? 나이……. 여든 둘…….”

걷다 말고 부스럭 부스럭 주머니 속에서 비닐에 싸인 노랗게 된 주민등록증을 꺼낸다. 1923년 11월 8일생…….  박 O O

“자식은 없으세요?”
“…….”

가까운 분식점을 찾았는데 분식점 아주머니가 음식을 팔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손님이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할 수 없이 일회용 용기에 라면과 김치, 나무젓가락을 얻어 할아버지가 기대고 앉았던 길가로 돌아왔다.

“많이 드세요.”
“고맙네, 젊은이…….”

나를 보고 젊은이라고 하는 할아버지의 눈이 순진하다.
침묵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내노라 하던 부농이었는데 20여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혼자 농사를 짓다 하나 있던 아들이 시골의 전답을 팔아 모시겠다고 하여 모두 정리하고 서울 아들집으로
올라 왔는데 얼마 후 시골 친척집을 다녀오니 아들 내외가 이사 가고 없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시골로 내려가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그것도 눈치가 보여 5년 전부터는 노숙을 하는데 그것도 젊은 노숙자들의 횡포에 시달려 아예 변두리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아드님 찾고 싶지 않으세요?”
“찾으면 뭐해,  그것들이나 잘 살면 됐지 어서 가보게 젊은이  바쁜데…….”


때에 절은 옷과 씻지 않아 꼬질꼬질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천진한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일인가?  
라면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 위로 9월의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고 있었다.



2005년 9월 26일 서울에서 김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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